과거·현재·미래 아우르는 개념 '유산'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구분
비지정 문화유산도 보호·관리 가능해져
"국가유산 새로운 역할과 가치 정립하겠다"
반세기 이상 사용돼온 용어 '문화재(文化財)'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대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유산(遺産·Heritage)'이 대두한다.
용어와 분류 체계가 모두 바뀌기는 62년여 만이다. 그간 널리 쓰여온 '문화재'는 1962년 일본 법률을 원용해 제정한 문화재보호법에 기반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과거 유물'이나 '재화'라는 성격이 강하고, 장인이나 자연물을 지칭하기에 부적합해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문화재청은 2005년부터 명칭 및 분류 체계 개편 방안을 논의했다. 각계 의견을 취합하고 2022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유산 체제 전환에 합의했다.
대체 용어인 '유산'은 국제 기준이다. 유네스코(UNESCO)가 1972년 제정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용한다. 성격에 따라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무형유산 등으로 나눈다.
문화재청도 국제 사회와의 연계성 등을 고려해 개념을 그대로 적용한다. 지난해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가유산 기본법'에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예술·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이라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기존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 등은 17일부터 크게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구분한다.
문화유산은 국보, 보물 등 유형문화유산과 민속문화유산, 사적 등을 망라한다. 자연유산은 천연기념물과 명승을 아우르고, 무형유산은 전통 예술과 의식주 생활 습관 등을 포함한다.
문화재청은 여러 법에서 사용해온 문화재 명칭도 유산으로 바꾼다. 예컨대 국가무형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등록문화재, 매장문화재를 각각 국가무형유산, 국가민속문화유산, 등록문화유산, 매장유산으로 대체한다.
국가유산 기본법에는 비지정 문화유산을 보호·관리하는 법적 근거도 담겨 있다.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 중심으로 보호하던 범위가 잠재적 가치를 지닌 유산과 비지정 문화유산으로 확대된다. 비지정 문화유산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정·등록하지 않은 유산을 가리킨다. 그동안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방치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새로운 체계에서는 시도 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향토 문화나 자연 보존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문화유산자료와 자연유산자료로 지정·관리할 수 있다.
국가유산 기본법은 산업 육성을 명시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국가유산을 매개로 하는 콘텐츠나 상품의 개발·제작·유통 등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국가유산을 활용한 산업을 장려해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앞으로 보존·규제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편익을 주는 미래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증진하도록 패러다임을 확장한다. 이에 따라 국가유산 활용 행사가 늘고 관련 데이터를 활용한 산업·기술도 부상할 전망이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국가유산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국민 편익을 도모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변화하는 정책환경과 유네스코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정책 방향을 전환해 국가유산의 새로운 역할과 가치를 정립하겠다"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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