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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천자]식물집사의 친밀한 이야기 '처음 식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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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식물 유튜버 '아피스토'는 식물을 처음 들이면 의식처럼 사진을 찍어둔다. 식물이 아플 때면 건강했을 때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다시 잘 키워보겠노라 초심을 다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이 있는 건물 11층에 '식물로 덮인 이상한 곳이 있다'는 소문이 돌자, 정말 공간을 통째로 식물로 덮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한다. 일 년 뒤, 그의 식물방 천장에는 스킨답서스가 울창하게 덮였고 벽 한쪽에는 열대의 덩굴식물들이 벽 타기 각축을 벌이게 됐다. 어느 날은 키우다가 죽어 나간 수많은 식물의 이름표를 모으다가 문득 죄책감이 들어 식물 이름표로 위령비를 만들기도 했다. 때로는 엉뚱해 보이는 식물집사의 생활이지만, 이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갈무리돼 그의 유튜브 영상의 소재가 됐다. 짧게는 1개월, 길게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식물의 성장 기록을 영상에 담아 그 과정을 공유했다. 글자 수 675자.
[하루천자]식물집사의 친밀한 이야기 '처음 식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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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테라리움 안을 들여다보니 푸밀라의 녹색 잎이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푸밀라(왕모람, Ficus pumila)는 엄지손톱만 한 잎을 가진 덩굴식물입니다. 푸밀라의 잎이 붉어진 이유는 아마 얼마전 새로 구입한 식물등을 달아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푸밀라는 작은 변화를 감지하고는 저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식물등을 햇빛으로 착각하고는 붉은색 파장에 반응을 한 것 같습니다. 푸밀라는 말이 없는 대신, 빛과 물과 흙을 양분 삼아 자신의 상태를 잎의 색깔로 발화하고 있었습니다.


"집사야, 나 지금 처음 보는 빛에 해바라기 중인데 잎이 그냥 활활 타오르고 있지 뭐야. 멋지지 않아?"


그날은 다행히 식물의 말을 놓치지 않고 푸밀라의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오, 멋진데?"


식물은 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식물집사는 식물이 말하는 대로 들을 준비만 하면 됩니다. 푸밀라의 새 잎에 갑자기 붉은색이 돌 때, 식물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들여다보는 일 정도면 충분하지요.


하지만 이날은 운 좋게 푸밀라의 말을 알아들었을 뿐입니다. 베고니아가 꽃을 피웠을 때도 모르고 지나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럴 때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현재를 살고 있지 않구나.'


식물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일이란 결국 현재에 집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걸 푸밀라가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아피스토(신주현), <처음 식물>, 미디어샘, 1만7800원

[하루천자]식물집사의 친밀한 이야기 '처음 식물'<2>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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