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테라리움 안을 들여다보니 푸밀라의 녹색 잎이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푸밀라(왕모람, Ficus pumila)는 엄지손톱만 한 잎을 가진 덩굴식물입니다. 푸밀라의 잎이 붉어진 이유는 아마 얼마전 새로 구입한 식물등을 달아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푸밀라는 작은 변화를 감지하고는 저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식물등을 햇빛으로 착각하고는 붉은색 파장에 반응을 한 것 같습니다. 푸밀라는 말이 없는 대신, 빛과 물과 흙을 양분 삼아 자신의 상태를 잎의 색깔로 발화하고 있었습니다.
"집사야, 나 지금 처음 보는 빛에 해바라기 중인데 잎이 그냥 활활 타오르고 있지 뭐야. 멋지지 않아?"
그날은 다행히 식물의 말을 놓치지 않고 푸밀라의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오, 멋진데?"
식물은 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식물집사는 식물이 말하는 대로 들을 준비만 하면 됩니다. 푸밀라의 새 잎에 갑자기 붉은색이 돌 때, 식물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들여다보는 일 정도면 충분하지요.
하지만 이날은 운 좋게 푸밀라의 말을 알아들었을 뿐입니다. 베고니아가 꽃을 피웠을 때도 모르고 지나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럴 때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현재를 살고 있지 않구나.'
식물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일이란 결국 현재에 집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걸 푸밀라가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아피스토(신주현), <처음 식물>, 미디어샘, 1만78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