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반도체법 시행 1년 반
파나소닉·LG엔솔 등 추가 공장 신설 포기
'바이드노믹스' 상징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SA) 시행 1년6개월이 지난 가운데 아시아 제조기업들이 건설비용 급등으로 미국 투자 계획을 철회하거나 늦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보조금 지급을 통해 자국 제조업 부활에 나섰지만, 기존 글로벌 공급망이 저비용·고효율 생산에 최적화된 데다 미국 내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어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공급망 재편 작업이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시아 기업들이 인센티브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공장 건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일본 최대 배터리 업체인 파나소닉은 지난 1월 미국 3공장 설립 계획 연기를 시사했다. 현재 캔자스주에서 북미 두 번째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지만 건설 비용이 급증하면서 세 번째 공장 건설의 생산성을 다시 따지기로 했다. IRA 보조금 요건을 충족하려면 미국산 원자재·부품을 상당 비중 사용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는 게 기업들의 계산이다. 철강 가격만 2020년 이후 70% 넘게 상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파나소닉 공장 건설에 참여한 소식통을 인용해 캔자스주 공장 건설에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투입되면서 공사 예산이 빠르게 소진됐다고 전했다.
다른 기업들도 비용 문제나 미국 내 불확실성으로 사업 계획을 조정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 모터스(GM)과 함께 인디애나주에 지으려던 네 번째 배터리 공장 계획을 취소했다. 세 번째 공장 건설·자재 비용 폭등 영향이다. 대만 반도체 회사인 TSMC는 애리조나주 2개 공장 가동 시점을 연기했다. 1공장은 올해에서 내년, 2공장은 2026년에서 2027년 이후로 생산 시점을 늦췄다. 미국 기업인 인텔조차도 200억달러 규모의 오하이오주 반도체 공장 건설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
오하이오 기반의 건설·엔지니어링 기업 SSOE의 최고경영자(CEO)인 빈스 디포파이는 "1년 전만 해도 '시장에 진출하자'라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한 발 뒤로 물러서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들의 투자 계획 철회는 IRA와 CSA발(發) 건설업 호황으로 미국 내 공장 건설 비용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에서 뜻밖의 결정은 아니다. 미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신규 산업 시설 건설 비용은 3년 전 보다 3분의 1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도 텍사스주 반도체 공장 건설에 수십억 달러의 추가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장 건설이 크게 늘어나면서 일부 기업들은 최근 몇 달간 공장 전력 공급에 필요한 부품 수급에만 100주 이상 소요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한 보조금 지급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최근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자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 중 상당수가 CSA 보조금을 받지 못할 것이며 "절반만 받아도 행운"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미국에 투자한 기업들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전미건설협회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케네스 시몬슨은 "미국 내에서 새로운 사업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공급망을 흔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아시아 기업들이 미국 내 추가 투자를 주저하는 것은 저비용·고효율 구조로 구축된 공급망을 고비용·안정 중심의 공급망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예상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미국 사업 확대를 위해 기업들이 바이든 행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지만, 효율성을 최우선순위로 의사결정을 하는 만큼 높은 비용이 수반되는 미국 내 생산기지 확대에 대한 부담 역시 안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 지급 여부나 규모가 불투명해지고, 공화당 대선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IRA 폐기를 예고해 미국 내 불확실성까지 가중되고 있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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