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 필수의료분야 한의사 참여 확대 등 주장
간호계, '간호법의 조속한 제정' 등 건의문 채택
"생명 다루는 만큼 치명적인 위험 있어… 숙고해야"
한의계와 간호계가 의대 증원을 두고 발생한 혼란 속에서 '숙원 사업'을 해결하려는 행보를 보인다. 이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지지를 선언하며 자신들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는 한의계와 간호계의 주장은 충분한 협의를 통해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우려한다.
한의계와 간호계는 지난달 6일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계획 발표 후 "의료공백을 메우고 의료개혁 성공을 위해 필요하다"며 한의사 권한 확대와 간호법 제정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의계는 지난달 7일부터 세 차례, 간호계는 지난달 14일부터 다섯 차례 관련 주장을 피력했다.
한의계는 정부 발표 다음 날부터 필수의료분야 한의사 참여 확대 등을 주장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달 7일 "10년 뒤에나 공급이 시작됨을 감안하면 우수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한의사들을 의료 사각지대에 즉시 투입해 활용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며 "정원을 늘려 의사 인력 수급을 조절하는 정책은 발등의 불을 끄기엔 요원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필수의료 분야에서 한의사들이 부당하게 소외당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한의약을 외면하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이자 책임방기다. 필수의료부터 피부미용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또한 "'필수의료분야 정책에 한의사 참여 확대'와 '지역의사제에 한의사 포함', '미용의료 분야 특별위원회에 한의사 참여 보장', '모든 의료인에게 시술범위 확대' 등도 꼭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 당국의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모습을 기대한다"고 했다.
정부 발표에 대해 의료계가 거세게 반발하자 한의협은 재차 '필수의료분야 한의사 참여 확대'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 19일 성명을 통해 "필수 의료분야 한의사 인력 투입 확대 정책을 즉각 실시해 줄 것을 정부에 거듭 제안한다"며 한의사를 방치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관계 당국의 명백한 직무유기다"고 했다.
한의협은 지난달 27일에도 "응급의약품 종별제한을 없애 의료인인 한의사가 이를 활용하도록 하고, 기본적인 예방접종을 한의원에서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의료인 직역 간 불필요한 장벽을 낮추는 조치가 시급하다"며 "한의사들의 1차의료(필수의료) 참여를 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호계도 의료 정상화를 위해서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한간호협회는 지난달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입장문을 통해 "정부의 의료개혁을 지지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의료개혁의 시작일 뿐"이라며 "▲간호서비스 보장을 위한 법 제정 ▲불법 의료행위 근절할 근본 대책 마련 ▲간호간병 국가 책임제 실시 ▲지방 의료 불균형 문제 해결 ▲재택 간호시스템 대폭 확대 등 5대 핵심과제를 정부에 요구했다.
간협은 나흘 뒤에도 "환자의 건강과 생명 보호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우선 간호사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정부에 간호사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 마련을 요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엔 "불법 진료에 내몰리며 간호법이 필요하고, 전문간호사에 대한 업무 범위 인정과 전담간호사의 법적 안전망 확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이번 조치가 시범사업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후에 법으로 제도화되어 의료현장의 간호사들을 보호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간협은 같은 날 열린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간호법 제정에 대한 우리의 굳건한 다짐이 필요하다"며 '간호법의 조속한 제정'과 '간호전문직 위상 제고를 위한 간호정책 수립' 등이 포함된 건의문을 채택했다.
의료계는 이같은 상황에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기회를 자신들의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기회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도 의사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의사 등을 투입하냐는 질의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답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확인된 만큼 한의협은 더 이상 근거 없는 주장을 중단하고 자제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응급의약품 종별제한을 없애 이를 불법적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예방접종을 한의원에서 불법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주장하고자 함이 궁극적인 목적이자 핵심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자신들에게 면허된 한방 행위에 본연의 자세로 혼신을 기울이고, 의료법을 준수한 한방행위에 매진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여러 의료 관련 이슈가 논의되는 것 자체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해 간호법보다 나은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는 등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논의와 협의를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의사도 자기 전공이 아닌 분야의 환자를 쉽게 다루지 않는다"며 "생명을 다루는 의료 분야의 정책은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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