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통산 14승 수확한 골프 스타
군 복무 이후 지독한 슬럼프 투어 카드 놓쳐
최근 싱가포르 식당 종업원 심폐소생술 화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즐기면서 하겠다"
"그 선수는 뭐해요?"
"시드를 잃어서 나오는 대회가 줄었다고 들었어요."
배상문에 관한 대화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9승,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3승, 미국프로골프(PGA)투어 2승 등 프로 통산 14승을 수확한 스타였다. 잘 나갔다. KPGA투어에선 2008년과 2009년, JGTO에선 2011년 상금왕을 올랐다. 2012년 ‘꿈의 무대’인 PGA투어에 진출해 3시즌 만에 두 차례 정상에 오르며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했다. 승승장구했다. ‘포스트 최경주’로 불렸다.
그러나 배상문은 2017년 군 복무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PGA투어 카드를 잃고 콘페리(2부)투어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번번이 쓴맛을 봤다. 역대 챔피언 자격으로 10개 남짓 B급 대회에 조건부로 출전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얻지 못했다. 나설 수 있는 대회 수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졌고, 팬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3년 전에는 골프를 아예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지난 시즌도 8개 대회에 출전해 페덱스컵 랭킹 223위로 부진했다. 그는 "솔직히 힘들었다. 대회에 계속 출전하지 못해 의기소침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다. 작년부터 샷감이 돌아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상문은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골프 외적인 일이었다. 지난달 13일 아시안투어 개막전 IRS 프리마 말레이시아 오픈을 앞둔 시점이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식당에서 김영수, 조민규, 한승수 등 동료 선수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출입구에 쓰러진 종업원을 발견했다. 바로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했고, 종업원은 조금 뒤 의식을 회복했다. 그는 "군대에서 CPR 훈련을 꾸준히 받았고, 수도 없이 연습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누구라도 나처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콘페리투어와 아시안투어 등에 출전하고 있다. 대회에 나서는 자세가 달라졌다. 선수가 뛸 수 있는 대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배상문은 "큰 투어에서 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곳에서든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모든 대회에 나설 때마다 베스트를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IRS 프리마 말레이시아 오픈에서 공동 9위로 선전했다. 이어진 아시안투어 인터내셔널 시리즈 오만 대회도 나섰다. 그는 "휴식 기간이 길면 좋을 것이 없다. 올해는 아시안투어로 일정을 시작했다"며 "10년 전 아시안투어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수들도 만나고 골프가 재밌어졌다"고 미소를 지었다.
배상문의 멘토는 ‘탱크’ 최경주다. PGA투어에서 통산 8승을 기록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50세 이상 시니어들의 무대인 PGA투어 챔피언스에서 뛰고 있다. 2021년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시니어 우승을 거뒀다. 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배상문이 힘들 때 붙잡아 준 은인이기도 하다. 평상시에도 종종 연락하는 사이다. 그는 "최 프로님의 격려가 힘이 된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배상문은 승부사다. 호쾌한 플레이에 시원시원한 언변으로 주목을 받았다. 현재 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김주형, 임성재, 김시우 등이 배상문을 보고 꿈을 키웠다. 배상문은 아시안투어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제2의 도약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조급한 마음은 버렸다. 부담감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윙 교정도 하고 있다. 데이나 달퀴스트 스윙코치와 함께 스윙의 일관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비시즌 동안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면서 "나만의 속도로 한걸음씩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상문의 목표는 PGA투어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페덱스컵 랭킹 125위 안에 들지 못해 PGA투어 출전권은 없지만 역대 우승자 카테고리를 이용해 몇 개 대회는 등판할 수 있다. 장기 플랜을 짰다. 늦어도 2026년까지는 PGA투어에 재입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시드 순번이 밀려서 많은 대회에 나설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좌절하진 않겠습니다. 대회에 나설 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뛰고 있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절대 놓치지 않겠습니다."
노우래 기자 golfm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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