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 정책은 사회 구조개혁 플래그십
여야, 저출생 대응에만 치우쳐 한계
총선이 40여일 남았다. 작년 말부터 공약이 하나씩 발표되고 있다. 이번 총선 공약에 기대를 가져도 될까? 정당 공약이든 지역구 공약이든 준비기간이 짧고, 4년 후 그 결과에 대한 보도를 보면 약속은 거의 절반쯤 지켜지지 않으니 말이다. 대선공약처럼 실행 가능한 과제를 거른 후 스스로 이행상황을 점검·공표하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공약 실현에 대한 기대는 반쯤 접어두는 게 낫지 싶다. 그런데도 선거에서 공약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계기로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총선공약에서 지키지 못한 부분은 나중에 대선 공약에 연결될 수도 있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두 당이 1호로 발표한 ‘일·가족 모두 행복’ 공약(국민의힘)과 ‘대한민국생존을 위한 저출생 종합대책’ 공약(더불어민주당)은 과연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성평등 관점에서 볼 때, 출산 시 아빠 유급휴가 1개월을 의무화하겠다는 국민의힘 공약과 육아휴직의 성별 사용을 공시하고 출산전후 휴가급여의 보편적 보장을 추진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은 긍정적이다. 더불어민주당 공약 중 만 17세까지 아동수당을 월 2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공약은 지속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그리고 아동 권리 보장 차원에서 중요해 보이고, 국민의힘 공약 중 아이돌봄서비스 지원을 소득과 상관없는 기본 지원과 소득, 자녀 수, 한 부모 등에 따른 추가 지원으로 재설계하겠다는 약속은 보편성과 형평성을 담보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문제는 구조 개혁을 위한 공약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대신 표심을 염두에 둔 임기응변적 재정 살포 공약이 더 눈에 띈다. 공약이 재정 대책 없는 아이디어 경연장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시민들은 오히려 혼란스럽다. 발표된 공약들이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약속인지도 모호하다. 무엇보다 저출생 대응에 치우쳐 여성·성평등 공약이 출산율 제고로 대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국민의힘이 출산휴가조차 아이 맞이 휴가로 개명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산모의 건강 회복과 그 기간 생계를 지원하는 출산휴가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은 저서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서 여성 경제활동이 상수인 시대에 돌봄 시간과 경제활동 시간의 충돌을 지적하며 회사의 탐욕스러운 노동구조를 바꿀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가족 돌봄 휴가, 유연근무 등 이미 적용되고 있는 제도들이 대기업만이 아닌 모든 직장에서 권리로서 지켜지고, 양성 평등하게 사용되며, 하루 노동시간이 7시간으로 축소만 되어도 여성들이 일이나 육아냐를 놓고 고민을 덜 해도 된다. 그런데 정작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촉진하는 강력한 공약은 찾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모 기업의 억대 출산축하금은 이미 계층화 추세에 놓인 혼인과 출산의 양극화만 진전시킬 뿐이다.
여성·성평등 정책은 사회구조 개혁을 위한 사실상의 플래그십이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의 변화를 촉구하기 때문이다. 작년 12월에 발간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2030 여성들의 양성 평등정책 강화에 대한 요구가 각각 84.3%와 77.5%다. 2030 남성들도 내용은 좀 다르지만 양성평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정치권만 둔감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여성위원회가 20대 과제를 제안한 정도다. 국민의힘은 아직 소식이 없다. 특히 국민의힘은 “격차 해소”를 이번 총선에 핵심 어젠다로 삼겠다고 하니 성별 격차 축소에 대한 공약이 포함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국정과제에서 성평등 정책 과제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을 고려하면 총선 공약에서라도 보충해야 한다.
차인순 배재대학교 초빙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