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사직서 제출
서울대 의대 교수 "전공의와 행동 함께"
"3월부턴 미복귀자 사법 절차 진행 불가피"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에 대한 의사들의 집단 반발이 의료계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전공의 집단 사직에서 시작한 단체 행동에 의대생 동맹휴학에 이어 의사단체 전반과 의대 교수들까지 동조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3일 오후 7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의 80.5%인 1만34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26일 밝혔다. 또한 해당 소속 전공의의 72.3%인 9006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집계됐다.
이에 앞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25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의협 비대위원과 각 시도의사회장, 대한공중보건의사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정책을 강행하면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발표하고, 정부가 의대 증원과 함께 추진하는 '4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역시 국민의 자유로운 의료 선택권을 침해하고 의사의 진료권을 제한할 것이므로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참석자 등 의사 200여명은 회의가 끝난 뒤 서울 동부이촌동 의협 회관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가두 행진을 벌였다. 의협은 다음달 3일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 의사 2만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열기로 했다.
전공의들 사직에 이어 다음달 주요 수련병원에 임용 예정이던 신규 인턴(수련의) 예정자들이 임용을 포기하고 나섰다. 서울대병원이 올해 채용한 인턴 184명 중 5명을 제외한 전원이 수련계약서 작성을 포기했다. 부산대병원, 전남대병원, 충남대병원, 제주대병원, 단국대병원, 순천향대천안병원 등 전국 수련병원의 임용 예정 인턴도 임용 포기서를 냈다.
한편 전공의의 빈 자리를 메꾸고 있는 전임의들도 재계약을 하지 않고 2월 말로 근무를 종료하려는 동향을 보인다. 3월 신규 전임의 임용 대상인 현재 전공의 4년 차들도 전임의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여서 이대로라면 주요 상급종합병원에 전임의 공백도 우려된다. 전임의는 1년 단위 계약직이고, 보통 1~2년 근무 후 병원을 떠나는 시스템이어서 이달 말 재계약을 하지 않아도 정부에서 제재할 수 없다.
현재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을 포함한 국내 대형 수련병원의 전체 의료진 중 인턴·전공의·전임의 비중이 거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이어서, 전공의 이탈에 이어 인턴과 전임의까지 공백이 생기면 해당 병원의 수술, 입원, 외래 진료가 사실상 '올 스톱'에 가까운 상태에 빠진다.
현재 동맹휴학을 추진하는 의대생들이 실제로 휴학을 통해 유급하면 올해 본과 4학년생의 내년 졸업이 불가능해져 내년에도 수련병원 인턴 수급이 불가능해진다. 인턴부터 전공의까지 이어지는 5년의 수련 과정은 연차별 직급에 따라 상급자에게 교육받으면서 각자 맡은 진료 업무를 수행하게 돼 있어 이들이 통째로 비면 국내 전문의 교육 시스템이 전면 마비된다.
여기에 일부 의대 교수들도 의대 증원에 대한 반발에 가세하고 있다. 연세대 의대 교수평의회는 24일 대정부 성명서를 내고 임상 의료전문가 의견을 반영한 제도 수립, 2000명 증원 결정 근거 공개와 전면 재검토, 전공의·의대생에 대한 사찰·협박 중단 등을 요구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정부가) 전공의에 대해 납득할 만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이들과 행동을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대 의대 일부 교수들은 서울대병원 겸직을 중단하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와 서울대병원은 별도 법인으로,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서울대병원에 파견 나가 겸직하는 형태로 진료한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겸직을 해제하고 병원 진료를 하지 않는 것은 의료법상 진료 거부에 해당하지 않아 정부가 제재하기 어렵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협의회도 26일 성명을 내고 "의료계와 정부는 서로 양보하라"며 "의대 증원 규모는 500명이 적절하다고 본다"며 정부의 2000명 증원 정책에 반대했다.
이와 같은 의료계 집단행동 확산에 정부는 26일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이 이달 중 복귀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진료 공백 해소에 나섰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전공의들이 오는 29일까지 병원에 돌아오면 지나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어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의료현장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협이 현실화하고 있다"며 "응급의료현장에서는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오는 29일까지 병원으로 돌아온다면 지나간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며 "3월부터는 미복귀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최대 3개월간의 면허 정지 처분과 관련 사법 절차의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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