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두 번, 30분간의 휴게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휴게실은 늘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는 직원들로 빽빽했다. 나는 무덤같이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 사이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거나 종종 끼니도 거른 채 공책을 펴들고 뭔가를 썼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유령처럼 희미해져버릴 것 같은 자신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에게나 그렇듯, 생존이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필사적인 노력으로 시작된 것은 좀 더 위대한 무언가를 외치는 함성이 외었다."
-제시카 브루더, <노마드랜드>, 엘리, 2021.
돈을 벌려고, 그로써 생존하려고 시작한 아르바이트였는데, 이 경험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생존조차도 돈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란 걸 가르쳐줬다. '좀 더 위대한 무언가'가 내게는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내게 생존 그 자체였고, 언제고 내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순간이 오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살면서 그런 순간이 몇번이고 찾아왔고, 나는 예고편도 없는 공포와 위기감 속에서 계속 글을 썼다.
글을 쓰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추거나, 그 무엇으로든 자기를 표현할 때만큼은 누구나 자신으로 존재한다. 존재할 뿐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내가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세상이 내게 말도 안 되게 덤벼들 때조차 조금도 기죽지 않게끔 나를 북돋웠다. 읽고 쓰면서 나는 점점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글자들은 쓰는 이를 둘러싸는 거대한 요새가 되어준다. 이를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하염없이 부러운 일이다. 나의 세계 안에 나 하나를 놓는 일. 자신이 언제 어디에 있든 그 요새 안에서 오롯이 머무를 수 있다는 사실이 쓰는 이에게 얼마나 비밀스럽고 또한 공공연한 자부심인지는 써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쓰는 사람과 만나는 건 그 사람이라는 세계 안으로 입장하는 일이어서 보다 큰일이 돼버리고 만다. 그 세계를 거니는 일은 무엇보다 볼 게 많아 즐겁다. 그게 오솔길이든 정원이든, 쓰는 만큼의 면적을 지닌 그 세계를 유영하며 그의 공기로 호흡한다.
-손화신,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 다산초당, 1만40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