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제조 확대 위해 대출 승인
SK실트론CSS, SiC 웨이퍼 생산 확대
AI 10년 주기 첫 해…"완전히 새 산업"
웨이퍼(반도체 원판) 제작 업체인 SK실트론이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조건부 대출을 승인받았다. 인텔이 미국 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강화를 천명한 가운데 미국이 반도체 원팀 형성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대출 프로그램 사무국(LPO)은 22일(현지시간) SK실트론 미국 생산 법인인 SK실트론CSS에 5억4400만달러(약 7230억원)의 조건부 대출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SK실트론CSS는 미시간주 베이시티 공장에서 전기차 등에 쓰이는 차세대 전력 반도체를 만들 때 필요한 실리콘 카바이드(SiC) 웨이퍼를 생산하고 있다. 이번 대출 자금은 SiC 웨이퍼 생산 확대를 위해 쓸 예정이다.
반도체 업계는 미 정부가 자국 반도체 제조 기반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대출 지원을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11월 SK실트론CSS 베이시티 공장을 찾아 "해외에서 만들어진 반도체 칩에 의존하지 않겠다"며 "반도체 공급망은 미국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반도체 제조 기반이 아시아 등 해외로 편중된 상황에서 자국 입지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SK실트론 관계자도 "미국이 자국 반도체 제조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여러 지원을 더하고 있다"며 "이번 대출 승인 건도 연장선에서 살펴볼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특히 이날 결정은 인텔이 마이크로소프트(MS)를 고객사로 두는 등 파운드리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직후 나온 것이어서 주목받았다. 미국은 민·관 반도체 원팀을 강조하는 등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기반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전날인 21일(현지시간) 미 새너제이 맥에너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IFS(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에서 "AI 시대 필수적인 첨단 칩은 (아시아로부터) 미국으로 (제조 기반을) 옮겨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에선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MS는 해당 행사에서 자사 AI 칩 제조를 인텔 파운드리에 맡긴다고 깜짝 공개하기도 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같은 행사에서 "엔비디아, 퀄컴, AMD도 인텔 파운드리 고객사가 되길 바란다"며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들에 러브콜을 보냈다.

반도체 업계에선 AI 반도체 시장이 이제 도입기에 접어든 만큼 미국이 ‘수주 블랙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2024년 회계연도 4분기(2023년 11월~2024년 1월)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생성형 AI 개발을 시작한 지 1년이 됐다"며 "이 기술을 모든 산업으로 확대하는 10년 주기의 첫해에 접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엔비디아가 앞으로 훨씬 많은 성장을 이룰 것으로 본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AI는 완전 새로운 산업"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국내 업계는 이 같은 시장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현재 추진 중인 미국 패키징 시설 투자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와 함께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후공정(패키징) 작업을 미국 공장에서 진행할 수 있지만 아직 세부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 관련 부지를 선정하는 단계에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서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이 미국 내 팹리스 고객 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다만 인텔이 현지에서 정부 지원 등에 힘입어 공격적으로 파운드리 사업을 확대하고 있어 치열한 경쟁을 앞둔 상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MS와 손잡고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려 하지만 아직은 선언에 불과한 상태"라며 "TSMC, 삼성전자를 상대로 실질 경쟁력을 높이려면 고객 신뢰를 확보하고 안정적인 품질을 구현하는 등 과제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미 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제조를 키우려는 의지를 보이는 만큼 국내 기업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계속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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