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 책 어때]자연사 화가들, 미지의 세계를 기록하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2분 18초
언론사 홈 구독 뉴스듣기 글자크기

런던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 출신
저자가 박물관 소장 작품 엄선

17~20세기 신대륙 방문 화가들
신기한 동식물 기록한 유능한 기술

"어류라도 그리려고 하면 그리기 자체보다 파리를 쫓는 게 더 일이었다."


영국 식물학자 조지프 뱅크스(1743~1820)는 1769년 타히티 섬에서 파리떼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이 데려온 화가 시드니 파킨슨(1745~1771)이 새로 발견한 식물과 어류를 그려야 하는데 들끓는 파리떼 때문에 작업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뱅크스는 자신의 식물학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제임스 쿡 선장(1728~1779)이 이끄는 인데버호를 타고 태평양을 탐험 중이었다.

[이 책 어때]자연사 화가들, 미지의 세계를 기록하다 1769년 4월 영국 식물학자 조지프 뱅크스를 태운 인데버호 탐사대가 타히티 섬에 도착했다. 자연사 화가 시드니 파킨슨은 타히티 섬에서 동갈치를 그렸다. 타히티 섬에는 인데버호의 화가들이 그릴 만한 바다 생물이 풍부했다. 총 148점의 어류 그림 가운데 66점이 타히티 섬에서 발견된 종이었다. 사진제공= 글항아리, (c)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
AD

‘자연을 찾아서(Voyages of Discovery)’는 17~20세기 신대륙, 아프리카, 호주를 찾아 나섰던 탐험가들과 이들이 꼭 데려갔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화가들은 미지의 세계에서 본 신기한 동식물을 발견한 당시의 모습으로 기록해줄 유능한 기술자들이었다. 파킨슨과 같은 이들을 자연사 화가라 불렀다. 자연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탐구하는 자연사는 신항로 개척 시대에 꽃을 피운 학문이었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1773~1858)이 공부한 학문이 바로 자연사였다. 다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의사였고 다윈도 처음에는 에든버러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의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케임브리지에서 새로운 학문을 공부했는데 바로 신학과 자연사였다.


‘자연을 찾아서’의 저자 토니 라이스는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갑각류 큐레이터로 일했던 인물이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은 소장품 8000만점, 미술품 50만점, 장서 100만권을 보유한 자연사의 보고(寶庫)다. 저자는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여러 자료에서 엄선한 도판 290점을 책에 싣고 이들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이 책 어때]자연사 화가들, 미지의 세계를 기록하다

자연에 대한 관심은 1660년 영국 왕립학회 창설로 이어졌다. 영국 왕립학회의 설립 목적이 자연과학 지식의 증진이었다. 당시 영국 왕립학회 회장은 영국 과학계 최고위직이었다. 조지프 뱅크스가 바로 왕립학회 회장이었다. 그는 1778년 왕립학회 회장에 올라 182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회장직을 역임했다.


그의 임기 중인 1781년, 미국 독립전쟁이 끝났고 영국은 더 이상 범죄자들을 북아메리카로 보낼 수 없게 됐다. 뱅크스는 호주에 죄수들의 새 유형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800명의 죄수를 태운 배 11척이 1788년 1월 호주 보터니만에 도착했다. 하지만 선단을 이끈 선장이자 호주의 첫 총독으로 부임한 아서 필립은 보터니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서 필립은 북쪽으로 더 이동해 포트잭슨에 정착했다. 오늘날 시드니다.

[이 책 어때]자연사 화가들, 미지의 세계를 기록하다 미국 원예가 존 바트럼의 아들인 윌리엄 바트럼이 그린 연꽃(Nelumbo lutea) 그림. 파리지옥(Dionaea muscipula)이 그려진 첫 식물학 그림이다. 왼쪽 구석의 연잎 아래에 파리지옥이 그려져 있다. 사진제공= 글항아리, (c)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

다윈은 라틴아메리카 해안선 측량에 나선 비글호의 항해에 동행했다. 비글호를 타고 1831년부터 5년간 남미 대륙과 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자연사와 지질학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했다. 비글호에도 오거스터스 얼, 콘래드 마텐스 등의 화가가 동행했다. 다윈은 비글호가 남미 해안선을 측량하는 동안 남미 대륙 곳곳을 도보로 여러 차례 여행했다. 비글호가 측량을 마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올 때는 뉴질랜드, 호주, 아프리카를 거쳤는데 이때 다윈이 진화론의 기틀을 마련한 갈라파고스 제도, 타히티 섬, 나폴레옹이 유배됐던 세인트헬레나 섬 등에 기항했다.


종의 기원과 관련해 저자는 다윈의 동료였던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1823~1913)의 공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윌리스는 1858년 태평양 말루쿠 제도의 트레나테 섬에서 다윈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트르나테 섬과 아마존 우림에서 본 동물들의 적응 방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은 4000단어짜리 논고를 동봉하며 이 글이 학술지에 실릴 만한 가치가 있는지 다윈에게 물었다.


윌리스의 논고에는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마친 뒤 20년 넘게 고민한 진화에 대한 개념이 요약돼 있었다. 다윈은 윌리스의 논문과 자신의 연구를 요약한 보고서를 함께 학회에 투고했고 이를 계기로 이듬해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윌리스는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공동으로 주창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기여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점차 진화론에 대한 공로는 다윈에게 집중되었다. 저자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윌리스는 자신의 기여가 잊히는 것을 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이 책 어때]자연사 화가들, 미지의 세계를 기록하다 찰스 다윈은 남미 파타고니아 앞바다에서 발견된 이 돌고래에 ‘델파이너스 피츠로이(Delphinus fitzroyi)’라는 이름을 붙였다. 비글호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를 기린 것이다. 피츠로이 선장은 이에 화답해 티에라델푸에고에 있는 산에 다윈의 이름을 붙였다. 사진제공= 글항아리, (c)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

자연사에 대한 관심이 대영박물관 설립의 토대 노릇도 했다.


의사였던 한스 슬론(1660~1753)은 어렸을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다. 슬론은 1687년 자메이카 총독으로 임명된 앨버말 공작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작의 주치의로서 자메이카로 향했다. 슬론은 자메이카 현지에서 화가를 고용해 자메이카의 식물, 과일, 어류, 조류, 곤충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 슬론은 이를 바탕으로 영국으로 돌아온 뒤 ‘식물 편람’ ‘자메이카 박물지’ 등의 책을 출간했고 식물 표본집 등을 계속 수집했다.


그의 수집품은 조가비 표본 6000개, 무척추 동물 표본 9000개, 어류 표본 1500개, 조류 및 알, 둥지 표본 1200개, 척추동물 표본 3000개가 될 정도로 방대해졌다. 슬론은 자신의 사후 수집품을 누구나 볼 수 있기를 바랐으며 이에 수집품을 나라에 기증했다. 영국 의회는 1753년 슬론의 수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대영박물관을 설립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자연을 찾아서 | 토니 라이스 지음 | 함현주 옮김 | 글항아리 | 412쪽 | 2만8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