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인간을 떼어놓는 일은 실로 대다수 사람의 삶에서 큰 부분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다수의 사람은 어떤 이유이든 어느 곳에서든 항상 걷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걷기는 만병통치약이다. 최근에 친구 한 명이 어머니와 메신저에서 나눈 대화를 내게 전해주었다. 장문으로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는 문자를 보내자 딱 한 줄로 유용한 응답이 왔다는 것이다. “바나나 하나 들고 산책 나가렴.” 하지만 걷기는 치료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걷기는 원하는 곳에 우리를 데려다준다는 실질적인 기능 외에도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삶이 그렇듯이 걷기 역시 시작과 끝이 있고 목적도 있다.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걷기를 선택한다. 동틀 때부터 해 질 때까지 과도하게 걷기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물건을 사려고 걸어서 길모퉁이 가게에 가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매일 수 킬로미터를 걷기도 한다. 이제 당신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요, 좋아요, 살면서 많은 시간을 걷는 데 쓴다는 건 부인할 수 없죠. 하지만 ‘걷기’가 그렇게 흥미로운 주제인가요?
발을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는 단순한 행위인 걷기는 인간의 진화 과정을 통틀어 예술적 표현에 자극이 되어왔다. 걷기라는 주제는 영문학 초기부터 은근하게나마 고통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등장했다. 중세 영시인 <방랑자>에서 주인공인 방랑자는 비탄에 젖어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아픔을 곱씹어본다. 순례라는 주제를 다룬 중세영문학에서 육체적인 순례 행위는 정신적인 치유와 병행한다. 중세 영문학에서 시작된 이런 형태는, 오늘날 낸 셰퍼드의 <살아 있는 산>(1977)과 로버트 맥팔레인의 <오래된 길들>(2012)이 그러하듯이, 자연과 걷기를 연계한 일종의 하부 문학 장르로 이어졌다. 걷기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결국 삶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기에,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시간을 투자할 만한 행위가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그러한 ‘투자 수익률’에 대한 기대감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승화시켜주거나, 그런 기대감 자체를 아예 잊게 해주기를 희망해본다.
-<걷기의 즐거움>, 수지 크립스 엮음, 윤교찬·조애리 옮김, 인플루엔셜, 1만68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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