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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텀하우스 좌담]"美 통상 예측불가…제재 수단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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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개정에도 대미흑자 2.5배 늘어…규제대상"
"누가 대통령 되든 미국 투자 자체가 인센티브"

편집자주도널드 트럼프의 부활인가, 조 바이든의 재선인가. 올해 11월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한국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통상정책이 급격하게 바뀌면 그동안 추진해온 수출 및 시장공략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기 트럼프 정부가 출범할 경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기존 정책이 폐기되거나 대폭 조정될 가능성이 커, 경영 리스크가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아시아경제는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채텀하우스 좌담회'를 열고 미 대선 후 통상정책의 변화, 그에 대한 한국 기업 대응책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채텀하우스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최정상급 연구기관으로 꼽히는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의 별칭이다. 이번 좌담회엔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표인수 법무법인 태평양 미국 변호사,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가나다순)가 참석했다. 좌담회는 참석자 명단을 공개하되, 각 토론자의 발언은 익명 처리하는 채텀하우스 룰을 따랐다.
[채텀하우스 좌담]"美 통상 예측불가…제재 수단 많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아시아경제 본사에서 열린 '채텀하우스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미국 대선과 기업 통상전략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허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최일권 아시아경제 산업IT부장, 유명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객원교수(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표인수 법무법인태평양 미국변호사.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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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최일권 산업IT부장


<사회>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선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당선 여부가 주목된다. 현 바이든 정부와 비교해 통상에서 가장 많이 바뀌는 부분을 어떻게 보나.

<토론자 A> '리더십을 위한 지침(Mandate for Leadership)'이라는 헤리티지 재단 보고서를 읽었다. 한국을 중국, 독일, 일본 등과 함께 대미 흑자국으로 표현하는 등 상당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중국뿐 아니라 한국을 견제하는 게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바이든 정부가 중국을 압박하는 방식은 동맹과 함께하는 '다자적 압박'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일방적으로 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동맹국 간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토론자 B> 누가 당선되든 본질적으로 미국 제조업을 부흥하고 미국 내 일자리를 가져오겠다는 점은 똑같을 것으로 본다. 한국 입장에서 정말 유의해야 할 점은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 주범이 한미 FTA기 때문에 한미 FTA를 손봐야 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2017년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적자가 179억달러(약 23조8500억원)였다. 하지만 개정 이후인 지난해엔 445억달러(약 59조3000억원)로 오히려 2.5배 늘었다. 우리나라가 무역수지 적자국 중 하나가 되면 여러 무역장벽과 규제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


<토론자 C>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유럽연합(EU), 일본 등 모든 나라가 다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모든 나라들이 트럼프 시대 관세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환경 문제에서도 큰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본다. 트럼프 정부는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다. 보조금도 환경 관련 이슈다. 그런 부분에서 트럼프 생각이 확고한 것 같다. EU와의 관계도 상당히 어려워질 것 같다. 왜냐하면 EU도 1기 트럼프 정부 때부터 미국과 마찰을 빚으면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아주 강해졌다. 공급망, 배터리, 반도체 모두 EU가 미국과 별도로 움직인다. 바이든 정부 들어와서 트럼프 정부 때 만든 무역확장법 232조를 협상을 통해 적당히 절충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밟았다. 트럼프 시대엔 쉽지 않을 것 같다. 특히 환경 문제에 대해 EU 입장은 확고하다. 별도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프랑스판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 등 환경문제는 EU가 끊임없이 주도권을 가지고 오려 하고 실제로 영향을 많이 미치고 있다. 디지털 분야에서도 미국과 부딪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EU 디지털시장법(DMA)이라는 게 나름대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과 그 부분에서 마찰이 심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 다음 정부가 탄소에 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시행하면 우리 기업 타격은 어느 정도일까.

<토론자 A> 트럼프 공약집을 보면 오히려 화석 연료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화석 연료 국제 연대를 만들 것이라고 돼 있다. IRA는 잘못된 법안이라는 생각이 있다. 기본적으로 트럼프 정부에서 환경 정책이 강화되지는 않을 것 같다.


<토론자 B> 오히려 환경을 관세 부과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요즘 추세는 지속가능한 철강을 주장하면서 환경 핑계를 댄다. 앞서 언급한 환경과 관련해 한마디 하면 우리 기업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섰을 때 단지 IRA 보조금을 없애는 측면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등 공화당 의원들이 최근 탄소 다배출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는 '해외오염 관세법안'을 제출했다. 그 뒤에서 법안에 지지하는 사람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무역대표부(USTR) 대표다. 2기 트럼프 정부에서 외교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통상은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가 중심인물로 떠오를 것이다. 법안을 공화당 의원들이 발의했고 라이트하이저가 지지하는 게 지금 워싱턴 분위기다. 공화당에서도 탄소세를 부과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토론자 A>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가 쓴 '자유무역은 없다(No Trade Is Free)'라는 책을 읽다 보면 트럼프라는 종교에 아주 굉장히 빠져 있는 느낌이 든다. 자기들을 혁명가로 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토론자 B> 그 책을 트럼프가 사서 돌렸다고 한다.


<사회>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 1기 트럼프 정부에서 일했던 관료들이 2기에도 포진될까.

<토론자 A> 1기 집권 당시 트럼프 공약을 만든 사람을 보면 배경이 다르다. 한명은 피터 나바로 전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이고, 다른 한 분은 신고전시장주의자다. 서로 처방이 다른 부분이 있다. 트럼프 정부 1.0에서는 정책 기조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소위 '글로벌 리스트'들이 많았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소위 주류 경제학자들이 관세, 무역적자는 통상 때문이 아니라 미국 사람들의 소비가 많아서 온다고 보고 설득하는 큰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2.0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사라질 것으로 본다. 관심 있게 보는 부분은 헤리티지 재단이 공화당을 위해 정책집을 계속 낸다는 점이다. 역대 공화당 대통령 중 헤리티지가 제시한 공약을 가장 많이 반영한 인물이 트럼프다. 나바로 전 국장도 통상을 굉장히 극단적이고 강한 정책으로 밀어붙이지만 기대하지 않은 정책들은 걸러질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안도감이 있다.


<토론자 B> 1기 때는 글로벌리스트와 미국 우선주의자 간 어느 정도 긴장과 견제 속에서 일했다. 하지만 당시 글로벌리스트 혹은 자유 무역(free trade)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2기 트럼프 정부에 다시 못 돌아오는 상황이 됐다. 따라서 미국이 협상 주도권을 잡기 위해 처음부터 관세를 매기는 등 강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한미 FTA 폐기든 뭐든 먼저 질러본 뒤 우위를 점하고 협상하는 사람들만 2기 트럼프 정부에 들어가는 것이다. 1기 집권 때 사례를 보면, 현재 상상할 수 없는 것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협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관세를 매기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협상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전문성을 대한민국이 키워야 한다.


<토론자 C> 2기 정부에 대한 트럼프 본인의 자신감은 굉장히 강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공고한 지지를 받고 있고 당선 확률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주변 관료들이 과거 트럼프 정책을 공부하고 바이든 정부의 실패를 보면서 결국 이렇게 가는 게 맞다는 상당한 확신을 가졌다. 어드바이저들도 그런 사람들 위주로 구성할 것 같다. 2기 트럼프 정부는 좀 더 안정적일 것이다. 1기 트럼프 정부는 트럼프 본인부터 불확실하게 정책을 집행한 부분이 있지만 2기는 조금 더 지속할 수 있고 확실하고 강한 정책을 집행할 것이다.


<사회> 바이든 정부가 1기 트럼프 정부 정책 일부를 받은 것도 있다.

<토론자 A> 바이든이나 트럼프나 정치인 아닌가. 지금 자국 우선주의, 국가주의는 세계적 현상이다. 대부분 국가가 세계화에 대한 피로감을 느낀다. 세계화 과정을 겪으며 약속한 많은 것들을 일반 국민들은 느끼지 못한다. 차이나 쇼크, 기술 쇼크, 이민 쇼크 식으로 나온다. 중국과 많이 접촉할수록 중산층은 몰락하고 일자리를 중국에 빼앗기고 임금은 하락하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 그걸 차이나 쇼크로 받아들인다. 중국 때문에 노동시장이 양극화됐는데 디지털 기술 들어오면서 양극화가 더 심화된다. 기술 쇼크다. 많은 나라들이 내셔널리스트 운동, 내셔널리스트 정치인을 선망하게 됐다. 바이든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도 정치공학상 유권자 표심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바이든이 트럼프 정책을 통상 외교 정책으로 계승했다기보다는 바이든, 트럼프 두 사람 다 국내 정치에 상당히 매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본다.


<토론자 C> 트럼프가 반세계화, 국가주의를 촉발한 것은 맞다. 트럼프 이전까지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돌아갔다. 하지만 그가 집권한 후 무역확장법 232조 같은 생각도 못 한 것을 꺼냈다. 자동차가 무슨 안보와 관련 있나. 자동차 만드는 회사 대부분 동맹국의 회사들이다. 그런 나라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기본적 기조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2기 트럼프 정부에 대한 트럼프 본인의 자신감은 굉장히 높다. 왜냐하면 그렇게 많은 사법 리스크 중에서도 그만큼 공고한 지지를 받고 당선될 확률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환경이 변했다. 트럼프 집권 당시 코로나19도 발생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해 각국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사회> 트럼프 공약이 담긴 '어젠다47', 언론인 밥 우드워드가 쓴 '분노(RAGE)'에는 한미 FTA 관련 내용이 나온다. 그만큼 재개정을 자신의 치적으로 보는 것 같다. 한미 FTA를 또 손보자고 달려들지 않을까.
[채텀하우스 좌담]"美 통상 예측불가…제재 수단 많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아시아경제 본사에서 열린 '채텀하우스 좌담회'에서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표인수 법무법인태평양 미국변호사(왼쪽부터)가 사전 환담을 갖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토론자 C> 미국 입장에서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도 있지만 멕시코보다 한국은 훨씬 취약한 것 같다. 한미 FTA와 관련해 늘 지적받는 부분이 중국과 연계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미국 혹은 유럽으로 나가는 제품도 중국의 싼 원재료를 활용해서 우회로로 나가는 게 아니냐는 인식이 상당하다. 포스코도 중국산 원재료를 싸게 가져와서 우리나라의 값싼 전기료로 영업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퍼져 있다. 미국은 정말 예측 불가능하다. 얼마든지 새 법을 만들 수도 있고, 무역확장법 232조 같은 전혀 생각도 못 했던 것을 꺼낼 수도 있다.


<토론자 B> 라이트하이저가 이런 말을 한다. 멕시코에 중국이 자동차 투자를 해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멕시코 원산지 규정이 느슨해서 중국이 멕시코에 투자한 것이 전부 멕시코산으로 둔갑해 미국으로 넘어온다고 한다. USMCA 원산지조항은 한미 FTA와는 비교도 안 되게 엄격하다. 자동차 때문에 엄격하게 만들었다. 한미 FTA를 건드리지 않아도 무역장벽을 세우는 온갖 방법이 있다. 한미 FTA 재협상은 1기 트럼프 정부의 성공적 치적이니 건드리지 않는다고 봐선 안 된다.


<사회> 정부도 무역 안보, 경제 안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조직도 만들었다. 1기 때보다는 인맥을 좀 더 갖추지 않았을까.

<토론자 A> 싱크탱크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연구소(America First Policy Institute·AFPI)' '보수 파트너 연구소(Conservative Partner Institute·CPI)' '미국 개혁센터(Center for Renewing America·CRA)' '미국 회복 행동(America Restoration Action·ARA)' 같은 단체의 인물들이 (트럼프) 캠프에 들어가 있더라. 앞으로 고위직을 차지할 가능성이 큰 사람 중 이런 단체들에 소속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싱크탱크 쪽에 선을 잘 대보는 건 어떨까. 헤리티지 재단이 제일 큰 우산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 특별히 트럼프와 가까운 사람은 못 봤다. 트럼프는 개인적으로 친해지기 힘든 캐릭터다.


<토론자 C> 한국을 잘 이해하는 동시에 미국 정부를 이해하는 그런 분들이 나름 가교 구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 같은 인물 말이다. 성김 전 주한미국대사도 트럼프와 바이든 대통령 집권 때 모두 공직활동을 했다.


<토론자 B>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중국에 대해서 아주 강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다. 중국에 더 집중된 정책을 펼 수 있다. 특히 전략 산업에 대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은 더 강해질 것이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가 경제통상 분야에서 주요 역할을 하리라 예상되는 만큼 라이트하이저 측과의 협상 경험과 인맥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사회> 리퍼트 전 대사나 스티브 비건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 등을 영입하지 않았나.

<토론자 B> 요즘은 '큰 정부 시대'다. 싼 물건 팔 때는 기업이 지정학을 따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정부가 개입하고 정부 정책에 따라 경영이 왔다 갔다 하는 불확실성 큰 시대다. 기업도 (지정학에 대해)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기업도 정부랑 원팀이 돼서 지정학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정부 원팀이라는 표현은 최근엔 서방에서도 쓰는 것 같다.


<토론자 A> 미국, 중국 같은 큰 나라는 국내 정책을 국제화, 다자화하고 있다. 우리 시장에 들어오려면 우리나라 법을 지키라는 논리다. 지정학, 지경학, 각국 정책에 대한 깊은 연구를 민간 기업이 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부분에서 '민'이 '관'의 역할과 도움을 원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이 풀기 어려운 문제에 참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급망 핵심 광물 문제의 경우 광물 채굴부터 정제까지 그 나라 정부의 여러 규제와 관련돼 있다. 정부가 관리하지 않고 민간 기업이 하면 하세월이다.


<사회> 현재 정부, 특히 통상교섭본부가 미국 대선 이후 움직임에 잘 준비하고 있다고 보나. WTO는 더 이상 작동을 안 하는 것 같다.

<토론자 A> 최근 통상교섭본부가 기업과 굉장히 긴밀하게 움직인다고 보고 있다. 특히 IRA, 전기차 리스 관련 조항에서 그렇다. 지난해 자동차 수출을 많이 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중국 장비 반입 규제 관련해 정부가 과거와 달리 기업과 굉장히 밀착돼 움직인다. 우리는 그동안 '다자주의 모범생'으로 너무 오래 살았다. 다자주의가 훼손돼 있는데도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보조금을 조금만 높이려고 해도 다자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손을 못 대는 것이다. 이미 세계는 다자주의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론자 C> 바이든 정부도 마찬가지였지만 2기 트럼프 정부에서 WTO는 아예 작동 안 할 것으로 본다. 완전히 달라진 환경에서 공급망, 수출통제, 기술 인력 문제가 다 묶여있다. 관련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이 (정부) 바깥에 필요할 것 같다. 경제 안보라는 것이 '국방' 안보 떼어서 생각하면 '산업' 안보다. 산업부에 무역안보국과 국장 조직이 있지만 굉장히 규모가 작고 단편적이다. 산업안보실 같은, 종합적으로 산업부가 조금 더 크게 역할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극단적이지만 '산업부총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대통령실 안보3차장 조직이 경제 안보를 맡게 됐다.

<토론자 C> 경제안보라는 게 너무 광범위한 개념이다. 자동차를 왜 경제 안보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미국 상무부는 '인더스트리&시큐리티'다. 산업 안보를 강조한다. (경제 안보는) 너무 개념이 광범위하다. 안보하면 일반적으로 국방 문제를 생각하는데. 산업 관련 안보를 조금 더 강조해야 한다.


<토론자 A> 세계 모든 나라의 이코노믹 시큐리티 정책들을 뽑아보면 공통점이 4개가 나온다. ①공급망 ②데이터와 주요 인프라 ③기술 유출 ④기술·에너지 포함 산업 육성이다. (대통령실) 경제 안보 3차장실이 일종의 컨트롤타워라 하면, 그 조직은 미·중 수출통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거기에 인프라를 어떻게 잘 보호할 것인가, 데이터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등 일부 영역에 그칠 것 같다. 기술, 에너지 포함 산업정책은 산업부 고유의 영역이다. 최근 통상이 너무 부각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지만, 지금 같이 경제 안보를 중요하게 여길 때 통상 전문가가 장관직을 수행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추세라고 본다.


<토론자 B> 미국이 보는 경제 안보는 '대중국 견제'다. 지킬 게 많은 나라기 때문이다. 산업 육성 관련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돼 있다. 각 나라가 중점을 두는 경제 안보는 나라별로 굉장히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한국 같은 나라들은 프로텍션(protection·보호)은 물론 프로모션(promotion·진흥)도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필요한 경제 안보 전략이 무엇인지, 중점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통상교섭본부가 전략 발표, 비전 제시를 했으면 좋겠다.


<토론자 A> 시장개척 중요성이 높다는 점은 우리 현실상 맞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경제 안보 영역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최근 EU가 들고나온 것이 '3P'다. 프로모션, 프로텍션, 파트너십(partnership)이다. 다른 나라와 연대해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프로텍션은 각 나라 공급망 보호 기술 유출을 막고 데이터 인프라도 막는다는 것이다. 프로모션은 산업정책, 정부가 대규모 자금 지원을 해 기술을 육성한다는 것이다. 3P가 EU에서 다 나왔다. (3P가) 경제 안보 관련 거의 모든 부분을 커버할 수 있다.


<토론자 C>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를 보면 모든 것이 안보와 관련돼 있다. 여기에서 경제 안보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 들어와서는 경제 안보가 하다 보니 '안보'에 상당히 치우쳐 있다. 경제라는 것이 거시(매크로)와 미시(마이크로)가 다 있다. 물론 매크로도 중요하지만 당장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광물 등이 없으면 안 된다. 이게 '산업'이다. 경제라는 너무 포괄적인 개념 속 '밀리터리'라는 확실한 개념이 맞물려 있다. 조금 더 명확히 하면 (경제 안보는) 산업 중심으로 가는 것이 맞다. (한국에서는 개념 정리가) 너무 포괄적으로 돼 있다. 경제 안보가 '모호한 밀리터리'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다.


<토론자 A> 참 혼란스럽다. 경제 안보 이야기를 할 때 자꾸 '밀리터리 시큐리티'를 얘기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곤란하다. 에너지 안보는 에너지를 잘 지키는(secure) 것이다. 식량 안보는 온 국민이 굶지(starve) 않게 잘 지키는 것이다. 경제 안보는 국민의 경제적 생존과 번영을 잘 지키는 것이다.


<사회>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가 대중국 강경파여서 미·중 관계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이 중국 규제를 하면 우리도 더 많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은 여전히 최대 시장이다.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채텀하우스 좌담]"美 통상 예측불가…제재 수단 많다" 왼쪽부터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표인수 법무법인태평양 미국변호사,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사진=김현민 기자

<토론자 C> 미·중 관계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긴장이 지속될 것 같다. 대만도 이슈다. 트럼프가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대만 관련 질문에 '대만은 조그마한 섬나라다. 거기 있는 TSMC 반도체 하나만 가져오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답변했다. 트럼프는 던져놓고 협상하는 스타일이어서 대만도 협상 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한국이다. 트럼프 시대에 '미국 이익을 위해 받아야 할 거는 공정하게 한국으로부터 보상받는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중 관계는 안 좋아지겠지만 한국 기업 입장에서 '무언가'를 해볼 여지는 조금 더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토론자 A> 요즘 상황에서는 '트리거'가 대만이 될 가능성이 높고 (미국이) '적성국무역법'을 적용하는 순간, 중국 자산을 동결하고 교역도 전면 동결하는 카드를 미국이 들고나오는 순간 중국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중국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하겠다고 하면 미국은 단호해질 수 있다. 대만 독립을 둘러싸고 중국 무력 개입을 할 경우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 정부 들어 한·미·일 전략적 선명성을 상부(정부)에서 확실히 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분야·업종·사안별로 얼마든지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최상위단계에서 전략적 선명성을 명확하게 밝힌 이상 얼마든지 하부단계(기업)에서 실속을 챙길 수도 있다.


<사회> 한·미·일 동맹이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도 유지될까.

<토론자 A> 약화할 것 같다. 일부 학자는 트럼프 정부 들어오면 한국에 '쐐기 전략'을 펼칠 수 있다고 본다. 조금 벌어진 틈에 쐐기를 박아서 벌리는 전략이다. 둘째로 '통일전선 전술'을 중국이 구사할 것이다. 통일전선 전술은 부차적인 적들(미국 동맹국)에게 유인을 제공한 뒤 (그들과) 연합해서 주적(미국)과 싸우는 전술이다. 동맹국, 우방국과 미국 사이의 관계가 트럼프 정부 들어와서 틀어질 가능성이 생기면 중국은 굉장히 움직일 수 있는 공간(룸)이 생긴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사회> 최근 트럼프가 '영향받을 수 있는 모든 품목 중국 의존도를 끊겠다'고 말했다. 공급망을 중국과는 아예 끊기로 작정한 것인가. 실현 가능성은 몰라도 의지는 있는 것 아닌가.

<토론자 B> 그렇게까지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토론자 A> '풀 디커플링'이 현실적으로 안 되는 걸 아니까 '선택적(셀렉티브) 디커플링'에 들어간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풀 디커플링 하면 미국인이 받을 고통은 상상 초월이다.


<사회> 트럼프가 당선되면 기업들은 미국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것인가. 대미 투자 기업들은 추가 투자를 지금부터 고려해야 하나.

<토론자 A> 정확하지는 않지만, 삼성은 배터리의 경우 언제든지 유연하게 움직이고, LGSK는 조금 물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2기 트럼프 정부는 미국에서 물건 파는 사람은 모두 미국 안으로 들어오도록 할 것 같다. 이 같은 산업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트럼프 시대 기업의 이윤과 국민경제적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산업 기지가 시장 중심으로 재편되면 시장이 큰 나라들은 큰 문제가 없다. 우리는 시장이 작다.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고민을 할 수 있다.


<토론자 B> 기본적으로 러스트 벨트가 스윙스테이트(경합주)여서 정치적으로 본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과거 통상정책은 미국이 관세를 내리는 거였다. 이제는 관세를 그대로 둘뿐 아니라 수입품 무역 장벽을 높인다. '적어도 우리 땅에서 생산하면 장벽은 없다'는 논리를 미국이 제시한다.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생산하면 페널티는 없다'고 한다. 페널티는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인센티브가 돼 버리는 것이다. 기업이 아무 무역 장벽 없이 경영하려면 투자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 수출만 하다가는 관세는 물론 관세 못지않은 해괴망측한 무역확장법 232조든, 탄소세든 제재를 맞이할지 모른다. 제재받지 않기 위해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 인센티브다.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런 상황으로 갈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좀 더 노골적으로 온갖 장벽을 칠 것이다. 시장이 있는 나라가 시장을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한다.



<사회> 공교롭게 우리 기업이 투자하는 지역이 미국 대선 스윙스테이트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토론자 C> 기업 입장에서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다. 1기 트럼프 정부를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에 투자를 많이 한 것은 법에 따라 상당한 보조금도 주고 투자 유인책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이 투자를 결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2기 트럼프 정부가 해당 정책에서 발을 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인센티브가 없는데 트럼프 정부 강요에 의해서 투자를 할 것인가. 트럼프 당선 여부를 보고할 수 있으면 지금 하는 투자를 지연하려 할 것이다. 새로운 투자 집행에 관해서는 당분간 상황을 보고 결정할 것이다. 우리도 생활 물가가 높지만, 미국도 만만찮다. USMCA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도 산업과 관련, 여러 제약이 있다. 현지 진출 기업 경영 과정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비용이 많이 든다. 과연 기업이 보기에 그런 투자가 지속 가능할 것인지 숙고할 것이다.


[채텀하우스 좌담]"美 통상 예측불가…제재 수단 많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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