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中 직구금액, 美 앞질러…절반 차지
'초저가' 앞세워 이용자 급증…1년새 2배 늘어
유통비용·관세 절감…낮은 배송비도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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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 안팎의 상품을 욕심껏 담았지만, 2만원이 조금 넘었다. 1만3000원 이상이면 무료배송인 만큼 결제를 진행한 뒤에도 '신박한' 아이디어 상품을 구경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국내 쇼핑몰보다 최소 반값 이상 저렴해 한 번 다운로드하면 헤어나지 못해 '개미지옥'으로 불린다. 중국 쇼핑 애플리케이션(앱 ) '테무(TEMU)'의 이야기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직구앱들이 국내 e커머스 시장에서 빠르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중국산 '초저가' 상품을 앞세워 국내 소비자들을 공략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무료 배송과 무료 반품은 물론, 대규모 할인 쿠폰 등 다양한 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고물가 시대 소비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작년, 중국 직구액 121% 급증…일등공신은 알리·테무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중국발 온라인 해외 직접 구매액은 3조2873억원으로 전년보다 121.2%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직구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수치다. 지난해 중국 해외직구 구매액은 그동안 1위 자리를 지켜온 미국을 사상 최초로 앞질렀다. 미국발 온라인 해외직구 구매액은 전년 대비 7.3% 줄어든 1조8574억원으로 집계됐다.
중국발 직구가 늘면서 전체 해외직구 구매액도 늘었다. 지난해 국내 온라인 해외직구 구매액은 6조7567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26.9% 성장한 수치인데,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6조원을 돌파한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저가 상품 공세로 큰 성장세를 보인 중국 해외직구가 전체 해외직구 규모의 성장을 이끈 셈이다.
전년 대비 직구 금액이 늘어난 품목들 역시 중국 직구 앱에서 주로 팔리는 품목이다. 지난해 해외직구 구매액이 전년 대비 크게 늘어난 상품군은 의류·패션 관련 상품(43.5%), 생활·자동차용품(35.9%), 스포츠·레저용품(65.5%) 등이다.
중국 직구 앱 이용자들도 크게 늘고 있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알리익스프레스(알리)와 테무 앱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각각 560만명과 360만명으로 분석됐다. 이는 같은 달 국내 주요 쇼핑 앱의 MAU 중 3번째와 5번째로 많은 수치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해외직구 플랫폼으로, 유명 연예인을 기용해 TV 광고를 집행하는 등 국내 e커머스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핀둬둬의 자회사인 테무 역시 해외직구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은 국내 e커머스 시장에서 높은 성장세를 보이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알리와 테무의 MAU를 합치면 920만명에 달하는데, 이는 두 번째로 MAU가 많았던 11번가(804만명)를 웃도는 수치다. 같은 달 2990만명이 이용해 가장 많은 이용자 수를 보인 쿠팡의 뒤를 중국 직구 앱들이 뒤쫓고 있는 셈이다.
중국 직구 앱을 이용하는 고객 수의 증가 폭도 가파르다. 지난해 1월 250만명 수준이던 알리의 이용자 수는 꾸준히 늘며 12월엔 560만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1년 새 앱 사용자가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테무의 성장세는 더 가파르다. 지난해 4월 6700명의 MAU로 집계가 시작된 테무는 지난해 12월엔 360만명의 이용자가 방문한 것으로 분석됐다. 단순 계산했을 때 1년도 안 된 시간에 500배가 넘는 방문자를 끌어모은 셈이다.
1000원의 개미지옥…온라인판 다이소
중국 직구 앱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 경쟁력이 꼽힌다. 이들 서비스는 생활용품과 액세서리, 의류, 소품 등을 1만원 이하의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일부 제품들은 배송비를 포함해 1000원대의 가격으로 제공된다. 해외에서 국내로의 배송비용을 포함하더라도 같은 제품을 국내 일반 쇼핑몰에서 구매했을 때보다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직구 앱들의 가격 경쟁력 비결은 이들의 모기업 자금력이다. 알리익스프레스를 운영하는 알리바바그룹과 테무를 운영하는 핀둬둬는 14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세를 이어왔다. 알리바바그룹과 핀둬둬는 중국 시장에서 내수용 플랫폼인 '타오바오'와 '핀둬둬'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알리바바의 매출액은 2248억달러(약 298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미국 아마존이 같은 기간 기록한 매출액인 1431억달러(약 190조원)를 뛰어넘는 규모다. 알리바바의 지난해 3분기 순이익은 278억달러(약 36조88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36.28% 뛰었다. 핀둬둬 역시 지난해 3분기 매출액과 순이익이 각각 688억달러(약 91조원)와 155억달러(약 20조5500억원)로 나타났다. 2015년 창업돼 비교적 업력이 짧은 핀둬둬는 중국 내수 시장에서도 공동구매를 바탕으로 하는 초저가 전략으로 급성장했다.
최저가 판매처 우선 노출…유통비용·관세 면제·저렴한 배송비
C커머스 기업들은 중국 현지에서 최저가 전략을 앞세워 성장했다. 가장 저렴한 상품을 상위 검색에 노출하는 전략을 구사해 판매자 간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수입 및 유통비용과 관련 세금을 아낄 수 있는 점도 가격을 낮추는 요인이다. 중국에서 제조된 제품을 정식 절차를 거쳐 수입해 판매하는 것과 달리, 개인이 직구했을 때는 유통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중간 유통업체를 끼지 않고 소비자가 중국의 판매자로부터 직접 구매하므로 중간 유통비용이 없다. 여기에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제조업 관련 시설이 집약된 만큼, 제조 관련 비용도 상대적으로 낮다.
국내 관세법상 개인이 구매하는 일정 금액 이하의 제품은 관세와 부가세가 면제되는 점도 저렴한 직구를 가능하게 한다. 관세법에 따라 개인이 직접 사용할 목적으로 수입하는 150달러 이하 제품은 목록통관 대상이다. 목록통관은 통관목록 제출만으로 수입신고가 생략돼 관세 및 부가세가 부과되지 않는 통관 방법을 뜻한다. 다만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식품류 등에 속하는 제품은 목록통관이 불가하다. 중국 직구 앱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이 대부분 150달러 이하의 저렴한 가격임을 고려하면 면세상품의 비중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저렴한 해외배송 비용도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었다. 해외배송비를 포함하더라도 가격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만국우편연합이 정한 배달국 취급비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배달국 취급비는 국가별로 배송 비용이 다른 점을 감안해 국가별 우편시스템 발전도에 따라 국제우편 비용 분담에 차등을 뒀다. 배달국 취급비를 산정하는 '우편발전지수' 기준에서 중국은 발전도가 낮은 국가로 분류돼 국제우편 발송 시 우편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중국 직구 서비스가 저가 제품에도 무료배송을 해주거나 저렴한 국제배송 비용을 매길 수 있는 이유다.
중국 직구 서비스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우면서 주요 소비층인 30·40세대들을 유인하고 있다. 알리의 지난해 연령대별 사용자층을 살펴보면 30대와 40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리익스프레스 앱 이용자 중 30대와 40대의 비율은 각각 26.8%와 26.75%로 동률을 이루는 것으로 분석됐다. 테무도 40대 이용자가 29.91%, 30대 이용자가 20.58%의 이용자 비율을 보였다.
국내 e커머스 업체들도 중국 직구 앱에 맞서 각자의 해외직구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지만,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쿠팡은 자체 직구 서비스인 '로켓직구'를 통해, 11번가는 미국 아마존과 제휴해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에서 해외직구 서비스를 제공한다. 쿠팡은 미국과 중국, 홍콩 등 해외 현지법인에서 직매입한 상품을, 11번가는 미국 아마존이 직매입한 상품을 국내로 보내는 형태다. 다만 취급하는 상품이 중국 직구 앱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가인 데다,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해야만 무료로 배송된다.
이처럼 중국 직구 앱의 저가를 무기로 한 '공습'이 진행되면서 국내 e커머스 업계도 긴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e커머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e커머스 오픈마켓에 입점해 상품을 판매하는 소상공인들이 (중국 직구 앱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상품이나 모조품이 버젓이 판매되는 점도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다. 이 관계자는 "중국 직구 앱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은 국내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상품들도 있어 제품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가품을 무분별하게 판매하는 점도 제대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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