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대출로 토지 매입"
한국식 PF제도 맹점 지적
시행사 자본요건 강화한
선진국식으로 변화 주목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현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제도의 맹점을 지적하며 근본적인 구조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토지 매입을 자기 자본으로 해결하는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대출을 일으켜 토지를 매입하는 것이 국내 PF의 구조적 문제로 지적돼 온 만큼 이 부분에 대한 획기적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최 부총리는 21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선진국의 PF는 기본적으로 땅은 자기 자본으로 사고 건물을 짓거나 사업을 할 때 금융을 일으키지만, 우리나라는 돈이 100 든다고 가정하면 5% 정도만 자기 돈으로 하고 나머지 95%는 대출을 일으켜서 땅부터 산다"며 한국식 PF의 맹점을 지적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분양가격이 폭락하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 구조"라며 "현행 구조하에서는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연구용역을 통해 PF 제도의 근본적인 구조 개선 노력을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향후 ‘선진국형 PF 제도’로의 변화를 추진할지 관심이 쏠린다. 국내 PF는 미국 등 선진국의 PF에 비해 시행사의 초기자본이 부족해 대출에 의존한다는 점이 주요 문제로 지적돼 왔다. 한국금융연구원(KIF)은 지난해 6월 발간한 ‘금융 브리프’에서 국내는 시행사가 총 사업자금의 10% 정도를 출자하고 토지매입 금액의 70~90%는 금융기관의 브리지론을 이용해 조달하는 반면, 미국은 시행사가 유한책임회사(LL)를 구성해 총사업비의 20~30% 수준의 초기 자본금을 마련하며 LL이 추가 투자를 받아 대출금을 모두 상환하고 토지 담보를 해제한 후 건설자금만 금융권에서 조달한다고 설명했다. 최 부총리의 지적과 맥락을 같이 한다.
선진국과 국내 PF의 또 다른 점은 수분양자의 자금으로 사업비를 충당하는지 여부다. 국내에서 대규모 주거용 부동산을 개발할 경우 보통 착공 직후 선분양이 이뤄지고 수분양자의 계약금과 중도금대출의 상당 부분이 사업비로 사용되는 데 반해 미국·캐나다·영국·호주 등은 선분양 방식의 부동산 개발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수분양자의 자금을 사업비로 활용하지 않는다.
미국식 PF 제도로의 변화를 위해서는 시행사가 초기 자본을 더 확충하고, 수분양자의 돈이 사업비로 사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게 KIF의 지적이다. 이보미 KIF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부동산 PF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행사의 자본요건을 강화하고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파트너십 구조를 유도해 부동산 개발의 초기자본을 확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면서 "부동산 개발 시 선분양 비율을 줄이거나 중도금 납입 비중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반드시 선진국식 PF 제도로의 변환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나 선진국에서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그걸 도입하면 우리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다소 비약"이라며 "PF는 분양 사업 등 단기적인 사업에 적용되기에는 리스크가 큰 사업 형태인 만큼 부동산 투자신탁(리츠) 등 대안적 자금 조달 기법을 활성화해 장기적으로 운영하는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김 연구위원은 "기존에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사업들이 지난 정부에서 분양가 상한제 및 대출 규제 등으로 지연되다가 금리 인상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정부에서 부동산 급등기에 과도하게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억제하는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PF 제도의 개선을 외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민생토론회에서 "건설 PF 부실은 이자 부담을 견뎌내느냐의 문제"라며 "중앙·지방정부가 PF 사업이 안 될 것 같으면 인허가가 안 된다는 쪽으로 빨리 결정하고, 해야 한다면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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