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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 집안까지 모시고 꿀물도 타줘야 하냐"…판결에 뿔난 경찰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3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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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 계단에 앉혀놓고 돌아온 경찰 2명 기소
'업무상 과실치사' 적용에 경찰 내부 반발
"판결이 나쁜 선례 만들어…근본 대책 만들어야"

취객이 집 앞에 방치돼 있다 숨진 사건과 관련해 그를 집 앞까지 데려다줬던 경찰관이 유죄 판결을 받자 경찰 내부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술 취한 시민에 대한 보호 조치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을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취객, 집안까지 모시고 꿀물도 타줘야 하냐"…판결에 뿔난 경찰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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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북부지법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A경사와 B경장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과 400만원의 약식명령을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30일, 112 신고를 받고 취한 채 길에 누워있던 60대 남성 C씨를 강북구 수유동 다세대주택 야외 계단에 앉혀놓고 돌아가 C씨를 저체온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가 적용돼 기소됐다.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일정한 업무 종사자가 당해 업무의 성질상 또는 그 업무상의 지위 때문에 특별히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태만히 함으로써 결과 발생을 예견하거나 회피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한다. 보통 과실에 비해 불법 및 책임이 가중됨으로써 중하게 처벌되는 것이 특징이다. A경사와 B경장이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처벌받자, 경찰 내부에서는 법원이 일선 치안 현장의 고충을 잘 모른 채 기계적으로 판결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경찰 직업 인증을 한 누리꾼 D씨는 "신고해서 출동하면 자신이 혼자 집에 가겠다며 도움의 손길을 마다하는 이가 대다수다"라며 "취객들은 물에 빠진 솜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 사람보다 손이 더 많이 간다. 심지어는 경찰에게 폭언하거나, 폭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리가 그들의 집에 강제로 들어가 꿀물까지 손수 타 줘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경찰 인증을 받은 또 다른 누리꾼 E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주취자를 다세대 주택까지 데리고 갔으나 정확한 호실을 몰라 대문 안 계산에 놓고 귀소했다고 들었다. 이는 통상적인 주취자 처리로, 경찰청이 말단 직원들에게 무책임할 정도로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다"라며 "주취자 본인이 괜찮다고 경찰들을 돌려보낸 것을 왜 자신의 할 일을 한 경찰들에게 책임을 지우는지 모르겠다. 판결이 참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취객, 집안까지 모시고 꿀물도 타줘야 하냐"…판결에 뿔난 경찰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편 경찰은 취객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지난해 5월 보호조치 메뉴얼을 새롭게 단장했다. 의식이 있더라도 정상적인 판단·의사능력이 없다면 소방 등 유관기관과 협업해 응급의료센터 등 의료기관으로 이송하는 등의 내용이 골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단순 주취자와 의식이 없는 만취자를 구분하는 등, 실제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조치요령도 담겨 있다. 하지만 주취자 병상이 있는 의료시설은 전국에 49곳뿐이라 90만건에 달하는 주취자 관련 신고를 담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또한 경찰관 직무직행법에 명시되어 있는 술 취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경찰의 보호조치에 대해서는, 술에 취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보호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보호조치를 실행해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허수아비 법'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경찰은 근본 대책으로 주취자 보호조치 관련법 제정을 추진 중이나, 아직 눈에 띄는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청장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다양한 지원 방법을 강구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실감한다. 법무와 감찰, 범죄 예방을 포함한 관련 기능에 부족한 점이 없는지 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고기정 인턴 rhrlwjd031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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