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의료진 조치와 뇌손상 인과관계 인정"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은 40대 남성이 1시간 만에 식물인간이 된 사건에 대해 병원 측이 피해자에게 5억7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9일 인천지법 민사14부(김지후 부장판사)는 피해자 A씨(43)가 후견인을 통해 모 대학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밝혔다.
평소 신장이 좋지 않았던 A씨는 2019년 4월 아버지와 함께 인천에 있는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 그는 "1주일 전부터 하루에 10차례 넘게 설사를 하고, 이틀 전부터는 호흡곤란 증상도 있다"며 "신장 치료를 위해 조만간 혈액투석도 시작한다"고 의료진에게 알렸다. 당시 응급실에서 잰 A씨의 체온은 40도였다. 분당 호흡수도 38회로 정상 수치(12∼20회)보다 높았다.
의료진은 호흡수가 정상이 아닌 A씨가 점차 의식을 잃어가자 마취 후 기관삽관(인공 관을 코나 입으로 집어넣어 기도를 여는 처치법)을 했다. 곧바로 A씨에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했으나 5분도 지나지 않아 A씨는 심정지 상태가 됐다.
흉부 압박과 심폐소생술을 통해 다행히 A씨의 심장 박동은 살아났지만, 결국 그는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반혼수 상태에 빠졌다. 응급실에 걸어서 들어간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이에 후견인인 A씨의 아버지는 2020년 5월 변호인을 선임해 대학병원 측을 상대로 총 13억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A씨 측은 소송 과정에서 "환자가 의식이 있는데도 의료진이 불필요한 기관삽관을 했다"며 "기관삽관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지 않는 등 경과 관찰 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대학병원 의료진이 기관삽관을 하는 과정에서 경과를 제대로 관찰하지 않았다는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학교법인측이 A씨에게 위자료 등 명목으로 5억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당시 의료진은 신장 기능이 떨어진 A씨 상태를 고려해 일반 환자보다 더 각별하게 호흡수·맥박·산소포화도 등을 기록하며 신체 변화를 관찰했어야 했다"며 "그런데도 의료진은 기관삽관을 하기로 결정한 후부터 심정지를 확인한 15분 동안 A씨의 상태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거나 기록하지 않았다. 이런 과실과 A씨의 뇌 손상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A씨의 호흡수가 증가하고 의식도 점차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관삽관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병원 의료진이 A씨의 심정지 이후 뇌 손상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점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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