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에 함께 간 고등학교 동창을 5년간 심리적으로 지배(가스라이팅)해 1억원 넘게 뜯어내고 자신이 만든 규칙대로 일상생활을 보고받은 20대 남성이 재판에 넘겨졌다.
4일 서울남부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강선주)는 강요, 공갈, 중상해 혐의로 A씨(24·남)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A씨와 함께 2018년 유학 프로그램을 통해 오사카 소재 대학교 유학생활을 함께한 고교동창 B씨(24·남)로, 유학 당시 두 사람의 나이는 만 19세였다.
검찰에 따르면 2018년께부터 A씨는 B씨에게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게임회사에 취직시켜준 것처럼 속여 B씨에게 회사가 요구하는 '게임 승수 달성', '후기 작성'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B씨가 이를 해내지 못하면 과제를 수행하지 못해 회사에 피해를 준 듯이 반복적으로 암시했다.
B씨는 게임회사에 손해배상을 하는 줄 알고 생활비의 80%를 A씨에게 송금했고, 이조차도 모자라자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해 일당을 전달하기도 했다. A씨는 손해를 배상하지 못하면 부모·여동생이 대신 이를 갚거나 B씨에게 체벌을 가할 것처럼 협박해 B씨를 심리적으로 지배했다. 이를 통해 A씨는 B씨로부터 2020년 12월부터 지난 3월까지 생활비, 아르바이트 일당 등 총 405회에 걸쳐 약 1억6000만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또 2019년 3월부터 지난 3월까지는 '게임회사에 대한 채무부담' 계약서를 작성하게 하고 B씨에게 정한 수면·식사·목욕 등의 생활 규칙을 지키게 하고 보고하게 한 혐의도 받는다. A씨는 '밥 먹었습니다' '세수했습니다' 등의 내용을 B씨로부터 보고받았다. 이를 어기면 벌금을 부과하고 누적되면 B씨를 때렸다. 지난해 9월에는 B씨가 게임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머리를 수회 때려 경막하혈종, 뇌내출혈 등 중상해를 가한 혐의도 있다. 검찰은 의료 자문위원의 진단 내용을 분석해 이 폭행으로 인해 B씨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으며 향후 인지기능 저하로 후유장해가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A씨는 B씨가 외국 생활을 하면서 타인과 접촉이 어려웠던 상황을 이용했으며, 함께 유학을 갔던 친구 C씨와의 접촉까지 차단했다. 또 B씨 SNS 계정을 관리하면서 B씨의 부모나 지인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삭제하고 B씨인 것처럼 행세해 B씨가 외부인과 접촉하는 상황을 완전히 차단했다. B씨는 검찰 조사에서 "SNS 계정까지 관리하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어차피 도움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 순응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B씨와 가족이 정상적인 삶을 되찾도록 심리상담, 경제적 지원 등의 조치를 취했으며, 향후 재판에서 B씨가 진술 절차에 참여하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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