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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는 떠났지만 꿈은 자란다… 고 정용환 축구 국대 ‘후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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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유소년 꿈나무 육성사업 이어

회비·후원행사로 어린 선수에 쾌척

“죽어도 끝나지 않은 찐 브로맨스”

한 시절 국가를 대표했던 축구인의 이름이 등장하는 후원행사가 곧 열린다. 현역도 아닌데, 또 그를 후원하자는 취지의 모임도 아니어서 참석자 100명을 훌쩍 넘기는 초동(初冬)의 밤이 이상하다.


‘후원의 밤’은 그가 꾼 꿈을 이뤄주기 위해 130여명의 동지(同志)들이 모이는 축제이다. 8년 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는 그날 참석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생전에 하고 싶어했던 일들이 이날 대리해서 진행된다.


새싹들에 재능을 기부해 축구의 꿈을 꾸도록 헌신했던 그가 못다한 꿈을 이제 그의 ‘팬’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들 사이의 깊은 우정을 흔히 말하지만, 죽어서도 7년여째 이어지는 이 독특한 브로맨스의 한 장면을 곧 보게 된다.


‘2023년도 정용환 축구 꿈나무장학회 장학금 전달식 및 후원의 밤’. 오는 28일 오후 6시 부산 서면 더파티에 열릴 예정이다. 회원과 초청인사 등 160여명이 한명의 옛 축구스타를 매개로 모인다.

스타는 떠났지만 꿈은 자란다… 고 정용환 축구 국대 ‘후원의 밤’ 2023 정용환 축구꿈나무 장학금 전달식, 후원의 밤 안내 플래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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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생 정용환. 살아 있다면 63세인 그는 축구 국가대표와 실업팀, 프로팀, 선수와 지도자 등을 거친 뒤 유소년 꿈나무를 키우는 스포츠 사업에 헌신하다 2015년 세상을 등졌다.


그가 떠나기 10여년 전인 2004년 그를 우상처럼 만난 팬들이 후원회를 만들어 당시 그가 하던 유소년 축구 사업을 도와오다 우상을 잃자 이듬해 그의 이름을 빌려 장학회를 발족했다.


이미 은퇴한 축구선수의 후원회를 만든 것은 처음일지 모른다. 또 세상을 떠난 스타의 꿈을 이어받아 팬들이 대신 사업을 하는 것도 들어본 적 없는 레퍼토리이다.


올해 정용환 축구꿈나무 장학금을 받는 어린 ‘축구인’은 모두 15명이다. 일부러 ‘엘리트 스포츠’ 학생 선수가 아닌 축구동아리 학생 가운데 축구 열정과 실력을 뽐내는 어린 학생을 뽑았다. 지금 최강자가 아니어도 된다. 축구에 열정을 갖고 미래까지 뻗어갈 묘목이면 된다. 그게 정용환의 생전 꿈이었다. 그래서 장학회는 엘리트보다는 유망주나 소외된 팀을 눈여겨본다.


그날 초등학생 FC 동아리의 초교 2학년생 13명과 초교 5학년 유망주 1명, 고교 2학년 특별장학생 1명, 부산교통공사 선수 1명 등이 모두 720만원의 ‘정용환 장학금’을 받아 간다. 장학금 전달에 이어 또 다른 축구꿈나무를 지원하기 위한 장학금 모금 행사도 열린다.

스타는 떠났지만 꿈은 자란다… 고 정용환 축구 국대 ‘후원의 밤’ 정용환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

정용환 축구 꿈나무 장학회 송춘열 회장은 “정용환 후원회부터 정 선수가 떠난 이후 장학회 사업까지 총 15회에 걸쳐 8400여만원을 쾌척해왔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작은 중식당을 운영하는 사장이고 회원 150여명 중 120여명이 송 회장처럼 중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다. 현재는 버스·트럭기사, 언론인, 법조인, 경찰, 금융인 등으로 장학회원이 늘어가고 있다.


부산은행도 이번 후원의 밤 행사에 500만원을 쾌척했고, 부산아이파크 POP운영위원장도 55만원, 회원과 초청인사 등이 소액의 후원을 할 예정이다. 육류 유통사업을 하는 일품미소 김동휘 대표는 장학회 부회장을 맡으며 해마다 육류 선물세트를 어린 선수들에게 후원해오고 있다.


장학회는 고 정용환 선수의 모교인 기장 칠암초등학교에 매년 발전기금 5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정 선수의 기일인 6월 7일을 전후해 부산아시아드 경기장에서 부산아이파크의 경기 일정에 맞춰 추모식도 열고 있다. 그의 영상을 틀어주고 추모 시간을 갖는 ‘정용환 데이’를 2016년부터 매년 진행해오고 있다.

스타는 떠났지만 꿈은 자란다… 고 정용환 축구 국대 ‘후원의 밤’ 1986년 멕시코에서 열린 제13회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정용환 선수가 뒷줄 왼쪽에서 2번째이다. (앞줄 왼쪽부터 변병주, 박경훈, 김주성, 조광래, 박창신, 뒷줄 왼쪽부터 차범근, 정용환, 허정무, 조영증, 최순호, 오연교 선수) [이미지출처=정용환 축구꿈나무 장학회]

들어오고 나가고 해서 현재 장학기금으로 회원들이 쌓은 돈은 무려 6000여만원이다. 그런데 장학회 회원들은 돈을 더 모아야 한다고 의아스런 말을 던진다. 고 정용환 선수의 고향인 부산 기장군에 전신 크기 동상을 짓기로 했기 때문이다.


현재 동상건립 서명운동을 벌여 3500여명의 동의를 받았고 이후 1만여명까지 서명에 동참시킬 계획이다. 장소 제공을 맡을 기장군은 동상건립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고 장학회는 내년부터 기금 조성에 힘을 쏟기로 했다.



후원 모금이 매월 매년 쌓이지만 그만큼 장학금으로 빠져가니, 장학회 통장의 잔고가 불어가는 속도는 안단테이다. 다만 고 정용환이 심었던 나무를 그의 ‘팬’들이 풍성한 결실로 되돌려주기 위해 뚜벅뚜벅 키우고 있었다.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kimpro77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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