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픈AI 창업자 샘 올트먼의 기습 해고 사태가 그의 복귀로 닷새 만에 끝났다. 인공지능(AI) 개발 속도를 둘러싼 ‘부머(boomer·개발론자)’ 대 ‘두머(doomer·파멸론자)’ 간 갈등의 단면으로 분석된 이번 사태에서 '부머' 올트먼이 승기를 잡으면서, 향후 오픈AI 내에서 AI 상용화 프로젝트가 가속화할 것을 예고했다는 평가다. 다만 이번 사태는 전 세계에 AI 신기술의 등장에 가려져 있던 보다 근본적인 질문도 던졌다. 어쩌면 축복이, 어쩌면 파멸이 될 수 있는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다. AI를 안전하게 개발하기 위한 가드레일과 거버넌스를 둘러싼 각국의 고민도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해고 불가능한 샘" 올트먼, CEO 복귀...AI 상업화 가속할 듯
오픈AI는 22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올트먼의 CEO 복귀와 그를 내쫓았던 이사회 일부 재구성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17일 올트먼을 해임한 오픈AI 이사회가 결국 마이크로소프트(MS)를 비롯한 투자자들의 반발, 오픈AI 임직원 700여명의 집단 사표 예고에 백기를 든 것이다. 자칫 올트먼이 복귀하지 않을 경우 챗GPT로 AI 열풍을 이끈 업계 리더 오픈AI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지는 상황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쫓겨난 지 5일 만에 오픈AI로 돌아오게 됐다"며 "실리콘밸리와 글로벌 AI산업을 뒤흔든 충격의 반전 드라마"라고 전했다.
올트먼의 복귀와 함께 오픈AI 이사진도 대거 물갈이됐다. 올트먼이 적극적으로 추천해온 인물인 브렛 테일러 전 세일즈포스 공동 CEO가 새 의장으로 합류했다. 경제 석학 래리 서머스 미국 전 재무부 장관도 이름을 올렸다. 기존 이사진 중 유임된 이는 올트먼 복귀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애덤 디엔젤로 쿼라 CEO가 유일하다. 향후 최대 9명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새 이사회에는 이번 사태에서 영향력을 드러낸 최대주주 MS 측도 합류가 유력한 상황이다. 경제매체 CNBC는 "이전 이사회에는 학계, 연구원이 포함됐으나, 새 이사들은 비즈니스, 기술 분야 등에 광범위한 배경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비영리기업으로 출발한 오픈AI가 다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비슷한 형태로 변모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올트먼의 복귀는 AI 개발에 있어 부머에 힘을 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툴 개발 속도를 높이고 이를 상용화하고자 했던 올트먼은 이제 개편된 이사회의 지지를 업고 오픈AI 내에서 자신의 비전을 한층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게 됐다. 해임 전 올트먼은 엔비디아와 경쟁할 AI 반도체 회사를 만들기 위해 중동 지역에서 자금 유치에 나서는가 하면, 애플 전 관계자와 협력해 AI 디바이스 개발 등도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그가 구상해온 각종 사업도 이제 오픈AI 주도로 가속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새롭게 물갈이된 이사진도 올트먼의 든든한 아군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새 이사회 의장이 된 테일러 역시 AI 서비스 상용화를 지지하는 인물이다. 앞서 올트먼이 적극적으로 추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정계, 재계, 학계에서 모두 영향력을 발휘하는 서머스 전 장관을 이사진에 영입한 것은 AI 개발 과정서 직면한 각국의 규제에 대응해 나가기 위한 일환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올트먼 본인과 MS 측 인사도 새 이사회 합류가 유력하다. 이 경우 올트먼과 AI 개발 철학을 같이하는 이들이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하게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트먼은 이제 AI 혁명의 의심할 여지 없는 의사결정자"라며 "누구도 ‘해고 불가능한 샘(Sam the Unsackable)’의 길을 가로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CNN방송은 "누가 오픈AI를 이끌고 운영할지, 보다 광범위하게는 AI 기술 개발 경쟁이 얼마나 빨리 진행돼야 하는지를 둘러싼 AI 업계의 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태의 최대 승자 중 하나로 평가되는 MS로선 올트먼을 비롯한 오픈AI 인재들을 모두 흡수하는 시나리오는 이루지 못했으나, 대규모 투자를 보호하고 오픈AI 내 영향력을 확대하는 승기를 잡았다. 그간 MS는 오픈AI 지분 49%를 가진 최대 주주임에도 불구하고, 비영리 이사회가 주요 결정권을 갖는 이 회사에서 의결권을 갖지 못했었다.
'부머 VS 두머' AI 개발 둘러싼 분열 드러나…고민 깊어질 듯
다만 올트먼의 갑작스러운 해임 배경이 된 AI 개발 속도, 상용화 등을 둘러싼 업계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AI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부머, AI가 인류에게 실존적 위험이 될 것이라고 보는 두머 간 분열이 수면 위로 떠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이를 계기로 오히려 양측의 갈등과 이를 둘러싼 논의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간 AI 개발과 상업적 활용을 주장해온 올트먼과 달리, 기존 오픈AI 이사진 대다수는 자칫 AI 개발을 너무 서두르다 인류에게 존재적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대표적 점진파인 수츠케버 수석과학자는 앞서 올트먼이 이러한 잠재적 위험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토너 역시 자신이 몸담은 조지타운대 보안·신흥기술센터 연구진이 공동 집필한 논문을 통해 AI 안전 문제를 놓고 오픈AI를 비판한 바 있다. 올트먼 축출 이후 임시 CEO로 선임됐던 에밋 시어 전 트위치 CEO 역시 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해온 ‘두머’에 속한다.
이러한 갈등 구도는 오픈AI 내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메타, 앤트로픽 등에서도 부머와 두머 간 의견이 엇갈리며 비슷한 상황들이 확인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사태는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열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전했다.
결국 이번 사태가 남긴 진짜 질문은 "AI는 안전한가?"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인 셈이다. 복스닷컴은 "인류보다 더 똑똑한 AI를 구축하는 동시, AI가 인류에게 안전하고 유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픈AI의 이중 임무"라며 "이러한 목표 사이에는 본질적인 긴장이 있다. 이번 오픈AI 사태로 기술산업에서 가장 큰 지진을 촉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AI 가드레일 등 규제를 둘러싼 각국의 고민도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타임은 "AI의 빠른 발전과 윤리적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해온 AI 스타트업들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고 짚었다. 폴리티코는 "빠르게 변화하는 AI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워싱턴 정책입안자들이 허를 찔렸다"며 "이번 혼란은 미 의회와 조 바이든 행정부가 AI 규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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