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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취재했습니다] 데이터 485만개 전수 분석…베트남 오지서 일주일간 'K원조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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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A실태분석[K원조 추적기]⑩
데이터 분석으로 문제점 정리
실패 사례 르포로 베트남行 결정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데이터 485만개 전수 분석…베트남 오지서 일주일간 'K원조 추적' 베트남 꽝빈성 반 라오 콘(ban rao con) 마을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를 살피는 구채은, 전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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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꿈은 이뤄졌는가

공적개발원조(ODA)는 독자에게 생소할 수 있는 단어다. 하지만 '원조'라는 단어는 이야기가 다르다. "기브 미 초콜릿 그런 것 말하는 거야?" "장충동 체육관 거기도 필리핀이 지어줬잖아."


'원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체로 그런 것이다. 전쟁의 아픔으로 모두가 굶주리던 시절 미국에게 초콜릿이나 밀가루 등을 배급받던 이야기들. 지금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사실 대한민국은 ODA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유일한 나라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내년도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으로 올해보다 45%나 증가한 6조5000억원을 편성했다. 그리고 대대적으로 사상 최대 규모라며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글로벌 중추 국가 실현을 위해 나아가겠다는 원대한 목표도 내걸었다.


"잘될까?"


역대 최대 예산은 취재 본능을 자극했다. 특히 예산은 국민 세금으로 쓰이는 만큼, 낭비 없이 필요한 곳에 잘 사용되고 있는지 낱낱이 따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ODA 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과의 사전 취재를 통해, 개발도상국에서 이뤄지는 만큼 관리 소홀, 비리 등 여러 문제가 지속적으로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코로나19로 현지에 관리자들이 방문할 수 없게 되면서 방치된 사업들은 부쩍 늘었다.


그러던 중 새만금 잼버리 논란이 일었다. 선진국이라는 위상에 도취됐지만, 시행이 부실해 결국 국제적 위상만 깎아내린 사업이었다.


바로 이런 '선진국 환상에서 벗어나기'에 주목했다. 진정으로 선진국 반열에 들기 위해서는, 대외적인 사업은 우리 정부가 조금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수원국(원조를 받는 나라) 입장에서도 이 사업은 절실할지 모른다. 보이지 않으니, 확인하기 어려우니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


먼저 정부의 10년 치 ODA 사업이 담긴 485만개 데이터를 다운받아 엑셀로 정리했다. 데이터 전문가를 영입했다. 'K원조 추적기'가 첫발을 뗀 순간이었다.


데이터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ODA 관련자들에게 취재한 문제점을 단서 삼아 485만개 데이터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했다. ODA를 시행하는 부처들이 어디가 있는지 따로 모아 살펴보기도 하고, 일정 금액이 넘는 대형 사업을 위주로 살펴보기도 했다. 가장 많이 원조하는 나라 베트남부터 시작해 수원국을 줄 세워보기도 했다.


데이터 분석 결과를 토대로 외교부 출입 기자는 ODA에 관여했던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고, 국제부 출입 기자는 일본, 스웨덴 등에 조언을 구하고 해외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의뢰하기 시작했다. 세종에서 기획재정부 등을 출입하는 기자는 예산과 관련한 취재를 맡기로 했다. 모든 정보를 구글 문서에 정리했고, 문서가 몇 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취재가 이뤄지면서 우리는 한국 ODA의 공통된 문제점을 정리할 수 있었다. ▲현지 사정을 파악하지 못한 경우 ▲사후 관리에 실패한 경우 등이었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데이터 485만개 전수 분석…베트남 오지서 일주일간 'K원조 추적'

감사원 모니터링 보고서에는 ODA 실패 사례가 기록돼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이름이나 시행 기관은 'A국', 'B국', 'C 기관' 등 익명으로 표기돼있었다. 실패 사례가 많이 등장하는 곳, 익명으로 남겨진 국가의 이름이 중복되는 곳일수록 원조를 많이 하는 국가일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가장 원조를 많이 하는 나라는 베트남이다. 번역기로 베트남어로 한국을 뜻하는 'Han quoc(한꾸옥)', 'ODA' 등 다양한 단어를 조합해 찾아내기를 수백 번. ODA 엑셀 데이터, 감사원 모니터링 보고서, 그리고 베트남 언론 세 곳에 모두 등장한 지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착공식 날 보도 자료가 대대적으로 나갔고, 이후 몇 년이 지난 뒤 베트남 현지에서는 한국의 태양광 ODA 사업의 실패로 인민위원회 감사에 들어갔다는 기사가 연속 보도된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데이터 485만개 전수 분석…베트남 오지서 일주일간 'K원조 추적' 베트남 꽝빈성 반 라오 콘 마을의 호티담(Ho Thi Dam) 할머니가 집 뒤뜰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베트남 언론과의 방송 인터뷰에서 두건을 둘러쓴 할머니는 "일 년 반 만에 모든 전기가 나갔다"며 두 팔을 벌려가며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 기사에 등장하는 호티담(Ho Thi Dam)씨다.


할머니의 호소는 강렬했다.


"여기다."


ODA 실패 사례 르포, 베트남 꽝빈성 태양광 발전사업 현장은 그렇게 선정됐다.


한인회, 한인 언론에 "혹시 꽝빈성의 태양광 ODA 실패 사례를 알고 있다면 연락해 달라"는 제보 메일을 보냈다. 한인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등장해 메시지를 뿌리곤 했다. 몇 군데서 연락이 왔으나 답변이 와도 결정적인 내용이 없어 실망하기도 했다. 여러 취재를 조합한 뒤 "현장을 가봐야겠다"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데이터 485만개 전수 분석…베트남 오지서 일주일간 'K원조 추적' 베트남 현지 언론과 한인회에 보낸 취재진이 보낸 메일들.

베트남에서의 일주일

반 라오 콘(ban rao con)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동허이 공항으로 가야 했다. 하노이를 경유해 국내선으로 갈아타 도착해야 하는, 편도 11시간의 긴 여정이었다.


"산악지대로 국가 전력망 설치가 어려워 태양광 발전을 통해 전력을 공급하려고 함."


ODA 사업 취지대로, 마을은 동허이 시내에서 차로 1시간 30분 산을 올라야 나오는 곳이었다. 유일한 도로는 일 차선 비포장도로, 바로 옆은 밀림이 우거진 낭떠러지였다. 심지어 주민들이 풀어 키우는 소 떼는 종종 이 도로를 가로막았다. 우기였기 때문에 도로에는 흙탕물이 고였고, 바퀴가 빠져 헛도는 일이 많았다. "차로 가기 어려워서 여기 취재하는 베트남 기자들은 오토바이를 잘 타는 분들이 온대요." 통역사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핸드폰은 마을 도착 1시간 전부터 수신 불가 상태가 됐다. 차 천장에 달린 핸들을 잡은 손에는 절로 힘이 들어갔고, 눈이 질끈 감겼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데이터 485만개 전수 분석…베트남 오지서 일주일간 'K원조 추적' 빈 라오콘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수업 시작 전에 팔씨름을 하며 놀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반 라오 콘 주민들은 그 노력에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베트남 통역원의 말에도 주민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흘간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마을에 출퇴근 도장을 찍었다. 고장 난 태양광 패널 10개를 잡초를 헤치며 찾아 확인하고, 이것저것 질문한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취재진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정도가 됐고, 숙소에 돌아와도 마을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됐다. 친밀감이 쌓이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을 그대로 담기 위해선 디테일 취재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응우옌 티 아잉(Nguyen Thi Anh)씨의 집은 매일 드나들었는데, 친해진 뒤에는 사진부터 그림 그리던 일기장, 스케치북을 전부 꺼내 보고 이를 기록했다. 우리가 마을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를 기사에 모두 표기할 수 있었던, 그리고 호티담씨의 60여년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끈끈하게 기사에 녹여낼 수 있던 이유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데이터 485만개 전수 분석…베트남 오지서 일주일간 'K원조 추적' 취재진은 반 라오 콘 마을의 학교와 유치원을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태양광 설치 위치를 표시해달라고 했고, 표시된 부분을 중심으로 동선을 그려가며 손상된 태양광 패널 갯수와 축전지 관리 여부 등을 체크했다.

추적

반 라오콘 마을 출퇴근 도장을 찍으면서도, 우리는 통역사와 함께 해당 ODA 사업과 관련한 베트남 정부 문서를 찾아 모았다. 문서에는 태양광 사업 시공사 KT와 계약한 하청업체 두 곳의 이름이 나와 있었다. 업체 주소를 구글로 검색해 일단 사무실을 찾아갔다.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음에서였다. 한 곳은 도산해 회사 자체가 없어진 상태였고, 다른 한 곳은 영업 중이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고, KT 정산 문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일단 호소했다. 처음에는 방어적으로 나오던 그는 구체적인 정황을 묻는 여러 질문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며 속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뒤뜰에 쌓인 기자재도 스스럼없이 보여줬다. 3화에 등장한 '한국 때문에 이혼했다'는 회사 관계자의 취재는 이렇게 성사됐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삼각 확인이 필요했다. KT와 재원을 지급한 한국수출입은행(EDCF)의 입장을 듣기 위해 공문을 보내고 취재에 나섰다. 정보 청구를 도와줄 곳을 찾기 위해 의원회관을 돌며 의원실을 물색했다. 반 라오 콘 마을 르포 기사와 함께 보도한 기사들은 485만개의 데이터 분석 위에 정보공개 청구 49회, 의원실 7곳과 협력해 얻은 자료들을 얹어 썼다.


후일담

'K 원조 추적기', 그리고 꽝빈성 태양광 발전 사업 실패 현장을 담은 내러티브 시리즈 '태양광과 장작'은 10월 24일부터 보도되기 시작했다. 내러티브 페이지는 30일 자로 공개됐다. "사람들이 웃고 있는 표정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예산 낭비 아닌가. 저 주민들에게 제대로 쓰여야 한다"라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보도가 나간 뒤 국회의원과 부처 관계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정감사 기간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협의의사록 없이 체결하는 한국 ODA에 대한 문제점 기사를 인용해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질의하기도 했다. 방 장관은 "예산 관리에 보다 철저하게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반응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기사를 감명 깊게 읽었다며 ODA 관련 질의를 소위에서 준비하고 싶으니, 취재진과 만나 설명을 듣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 ODA 예산이 앞으로 알맞은 곳에 올바로 쓰일 수 있게 우리는 그동안 취재한 것들을 최대한 전할 것이다.


다만 아직 반 라오 콘 마을에 다시 찾아가겠다거나, 이를 수리해주겠다는 시행 기관의 공식 입장은 받지 못한 상태다.


우리가 호티담씨에게 해줄 수 있었던 일은, 있었던 일을 기사로 한국에 전하는 것이었다.


베트남어로 우리나라를 부르는 이름 한꾸옥. 그는 언젠가 한꾸옥에서 고장 난 패널을 고쳐줄 사람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내 것이 아니라 한꾸옥에서 준 것'이라며 그가 지켜온 전지함의 배터리를 보며 분명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저 빛만 있으면 좋겠다"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 ODA 사업 관련자들이 응답하길, 간절히 바란다.


■인포그래픽 페이지■

태양광과 장작 - 베트남 반 라오콘 르포

(story.asiae.co.kr/vietnam)

원조 예산 쪼개기는 어떤 문제를 가져오나

(story.asiae.co.kr/ODA)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데이터 485만개 전수 분석…베트남 오지서 일주일간 'K원조 추적'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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