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에 로봇탱크 투입한 러시아
소련이 2차대전 때 개발한 '텔레탱크'서 기원
챗GPT 개발에 자율형 '킬러로봇' 등장 우려
러시아군이 지난 1월 우크라이나에 실전 시험을 한다며 보냈던 인공지능(AI) 전투 로봇탱크인 '마르케르(Marker)'가 지난달부터 아예 실전 투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AI 분야의 화두가 된 '챗GPT'와 함께 자율전투 기능을 갖춘 로봇탱크는 공상과학(SF) 영화에서만 보던 전투로봇의 현실판으로 불리며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특히 이 탱크는 자율주행을 하면서 동시에 피아를 직접 식별, 판단해 적군을 공격하는 기능까지 있다고 러시아군이 주장하면서 더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 성능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히 크지만, 전선 상황이 악화한 우크라이나 전선에 실전투입까지 된 만큼 예상 밖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죠.
실제 이 자율전투용 탱크의 경우, 옛 소련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개발한 무선조종 탱크였던 '텔레탱크(Teletank)'의 영향을 받아 제작돼 러시아가 기술적인 부문에서 상당히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과 서방 각국은 물론 전 세계 방산업체들도 앞다퉈 이런 AI 자율전투 기능을 갖춘 탱크와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요.
공중전의 드론(Drone)에 이어 지상전에서 AI 탱크까지 전장을 점점 로봇이 지배하게 되면서 대량의 '킬러로봇'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이 없는 로봇들이 전선에 대거 투입되면 앞으로 전쟁은 더욱 잔혹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뉴스(News) : 러시아군, AI 로봇탱크 우크라이나 전선에 4대 투입
먼저 러시아군의 AI 탱크 소식에 대한 뉴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8일(현지시간)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지난 1월 말 우크라이나에 실전 훈련을 위해 보낸 AI 탱크인 마르케르 탱크 4대를 지난달 말부터 우크라이나 전선에 실전 투입했습니다. 해당 탱크는 정찰은 물론 피아식별, 적 탱크에 대한 공격도 자율적으로 감행할 수 있다고 러시아군은 주장하고 있죠.
이 탱크는 러시아의 방위산업체이자 군사용 로봇 전문 제조업체인 안드로이드나야 테크니카(Androidnaya Tekhnika)가 2018년부터 개발한 무기입니다. 러시아 내는 물론 시리아 내전 등 러시아군 주요 파견 지역에서 플랫폼 개발과 성능 향상을 위한 실전 테스트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군에 따르면 마르케르 로봇탱크엔 7.62mm 기관총과 대전차 미사일 등이 장착돼 있고, 군용 드론도 운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적군은 물론 각종 소형 드론도 100m 안팎 거리에서 곧바로 위치추적 및 요격이 가능하다고 하죠. 적군 공격은 물론 아군 병사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동시에 수행할 능력을 갖췄다고 러시아군은 강조하고 있는데요.
자체 무게가 3톤(t) 정도로 시속 8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고, 1번 배터리 충전만으로 3000km를 이동할 수 있다고 러시아군이 자랑하고 있죠. 약 5km 떨어진 거리에서도 무선 조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러시아군 무기의 실전 능력에 대해 통상 의구심을 가진 서방국가들에서도 이 AI 탱크의 능력에 대해서는 예상외로 강력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자율주행 탱크란 개념 자체가 처음 생긴 곳도, 그런 탱크가 처음 만들어진 곳도 러시아라 기술 축적이 상당하기 때문이라고 하죠.
◆역사(History)1 : 소련서 1939년 개발한 '텔레탱크'서 기원
실제 러시아에서 무선조종 무인탱크가 처음 개발된 것은 1939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이라고 합니다. 개발 자체는 1917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유입된 초기 형태 탱크에서 비롯됐다고 하네요. 특히 나치 독일과의 전투에서 이 무인탱크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는데, 무선조종 해서 움직였다고 하여 텔레탱크라고 불립니다.
러시아 국영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이 텔레탱크는 500~1500m 거리 내에서 무선 조종자가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아주 다양한 작전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텔레탱크에는 기관총 , 화염방사기, 연막 통, 때로는 탱크 전체에 시한폭탄을 장착해 적군 요격은 물론 정찰, 자폭용 무기로까지 활용됐는데요. 강력한 폭발물을 설치해 적의 참호나 지하 벙커까지 폭발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러시아군은 2차대전 동안 1만대 이상의 텔레탱크를 생산해 활용했다고 전해지죠.
특히 이 탱크가 2차대전 당시 소련의 대독일전에 많이 활용됐던 이유는 소련군의 부족한 인력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소련군은 독일군의 파상공세를 막기 위해 3500만명에 이르는 청년들을 군인으로 징집했지만, 전쟁 초반 잇따른 참패로 2000만명 이상이 사망해 엄청난 병력 부족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이로 인해 독일군에 대한 공세를 감행할 병력이 부족해지자, 수천 대에 이르는 텔레탱크들을 동시에 출격시켜 막대한 규모의 기갑부대가 진격하는 것처럼 허장성세를 벌였다고 하는데요. 이는 1943년 이후 점차 패색이 짙어져 갔던 독일군에게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주고 사기를 꺾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역사(History)2 : 중동 내전서 지뢰 제거·조난사고 등 다방면에 쓰여
이후 한동안 잊혀졌던 무인 조종 로봇탱크가 다시 태어난 계기는 미국의 9·11테러와 중동전쟁이었다고 합니다. 1990년 설립됐던 로봇 전문기업인 아이로봇(iRobot)사가 개발한 '팩봇(Packbot)'이란 로봇이 그 주인공이었는데요.
CNBC에 따르면 9·11 테러 직후 생존자 수색에 쓰였던 팩봇은 곧바로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에 동원되며 맹활약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2000대 이상이 중동에 투입돼 주로 정찰 임무와 폭발물 제거 임무 등을 도맡았죠. 일부 팩봇 제품들은 이후 더욱 개량돼 미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탐사용 로봇개발에도 활용됐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미군 내에서 2018년부터 차세대 전투용 무인 장갑차를 비롯한 AI 전투 탱크 개발에 한창이라고 알려져 있죠. 각종 전투용 로봇탱크가 군인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많은 실전 테스트가 이뤄지고 데이터가 모이면서 이제 완전 자율 전투용 로봇 탱크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 국방부는 2024년까지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라고 하네요.
크기도 점차 거대해져 러시아군이 운용 중인 마르케르보다 10배 이상 무거운 20~30t 짜리 무인탱크도 개발되고 있다는데요. 육상 무기 전문 매체 아미레커그니션닷컴에 따르면 미 육군은 지난 2021년 6월에 포트 딕스에서 원격조종 전투차량 중형(RCV-M) 실사격 시험을 벌였습니다. RCV-M은 30mm 속사포와 M240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고, 무게가 20t 이상 나가는데요. 앞으로 주력 전차인 M-1 에이브럼스 전차 규모의 대형 AI 탱크도 개발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시사점(Implication) : 챗GPT 등장에 자율적 '킬러로봇' 개발 논란 확산
특히 이런 AI 탱크들의 기술개발은 최근 AI 챗봇인 챗GPT의 등장과 함께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개발이 자칫 인간을 대량살상하는 SF 영화 속 킬러로봇의 등장을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죠.
지난달에는 이와 관련한 국제회의도 개최됐습니다. 우리나라와 네덜란드가 공동 주최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렸던 '군사적 영역의 책임 있는 인공지능에 관한 장관급 회의(REAIM 2023)'가 그것인데요. 60개국에서 관련 고위인사들과 더불어 국제기구, 싱크탱크 등에서 2000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였습니다.
특히 이번 회의 참가국들은 25개 항목에 이르는 'REAIM 공동 행동 촉구서(call to action)'를 발표했는데, 군사 영역에서 AI 기술 개발에 있어 국제법을 준수하고 국제 안보를 해쳐선 안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는 이유는 전장에 도입되고 있는 이 AI 로봇 무기들의 사용과 관련한 윤리적, 국제법적 기준이 전무하기 때문인데요. 감정이 없는 로봇이 전장의 군인으로서 비율이 높아지면, 아무 거리낌 없이 민간인을 대량살상하면서 불필요한 인명피해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죠.
앞으로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킬러로봇들의 인명 살상과 관련해 최소한의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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