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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韓정부서 일본 못 가게 하나요?”…관광도시 벳푸·유후인 삼킨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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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본 한일갈등] <4>또 다른 일본 “그래도 교류는 계속돼야”
수출규제 조치 100일, 지역경제 떠받치던 韓 관광객 발길 뚝 끊겨
한국인 줄서던 벳푸 온천 ‘썰렁’…“오해 풀고 다시 찾아오길”

[르포]“韓정부서 일본 못 가게 하나요?”…관광도시 벳푸·유후인 삼킨 ‘정적’ 벳푸 지옥온천 주차장 전경. 한국인 단체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즐비했던 공간이 텅 비어있다. 사진 = 김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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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벳푸·유후인(일본)=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정부에서 일본에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나요?" 일본 최대 온천 호텔의 홍보 담당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불쑥 물었다. 그는 한국 관광객 감소 원인을 양국 간 갈등으로 보고 있었지만, 이렇게 관광객 숫자가 급감한 배경이 민간 차원의 불매운동이라는 점을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일본 수출규제 조치 후 100일, 일본의 대표 온천 도시 벳푸(別府)는 한국인 관광객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지난달 28일 찾은 벳푸역과 시내 상점가는 한산했고, 가게는 문을 닫은 곳이 태반이어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평소 한국 단체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줄지어 서 있던 역 앞 주차장 역시 텅 비어있었다. 한 상점가 직원은 "한국 관광객을 못 본 지 몇 주 됐다"며 "일본은 좋은 나라인데 한국 사람들, 한국 대통령이 기가 좀 센 것 같다"고 토로했다.


상인들의 불안은 이미 수치로도 드러나고 있다. 벳푸와 유후인이 위치한 오이타현 관광통계에 따르면 8월 외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31.7% 줄었고, 한국인 관광객은 전년 대비 67.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전체 외국 관광객 중 한국이 71.6%를 차지했던 반면 8월엔 21.1%에 그친 것이다. 지역경제를 떠받치던 한국인 관광객이 사라지자 타격은 고스란히 지역 주민의 몫이 됐다.

[르포]“韓정부서 일본 못 가게 하나요?”…관광도시 벳푸·유후인 삼킨 ‘정적’ 오이타현(벳푸·유후인) 외국인 관광 통계. 자료제공 = 오이타현 관광정책과/그래픽 = 이진경 디자이너

"추석 때 한 팀도 없었다" 텅빈 관광지


일본 최대 온천 호텔인 벳푸 스기노이 호텔 역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호텔 관계자는 "12~2월, 그리고 9~10월 추석 연휴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았는데, 올해 추석 땐 1팀도 없었다"며 "이 상태로 갈 경우 연말 한국인 관광객 공백을 대비해 내국인 유치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벳푸 유명 관광지 지옥온천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온천지구 주차장엔 승용차만 간간히 오갈 뿐 대형 주차장은 공터나 다름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한국인 관광객이 극단적으로 줄었다"며 "버스회사의 타격이 커 도산 위기에 처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


벳푸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온천도시 유후인. 한적하고 조용한 휴양지로 한국에 알려지면서 단체는 물론 개인 관광객이 몰려들던 도시엔 정적이 흘렀다. 시내 상점가 초입엔 폐업한 가게가 눈에 띄었고, 거리는 한적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았다는 캐릭터 기념품 가게 직원은 "7월 전후로 매출이 70~80%가 줄었다"고 밝혔다.


[르포]“韓정부서 일본 못 가게 하나요?”…관광도시 벳푸·유후인 삼킨 ‘정적’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던 벳푸 지옥온천 인근 상점가는 주말 오후에도 오가는 관광객이 10여 명도 채 안 될만큼 한산했다. 사진 = 김희윤 기자

"문재인 탓" vs "아베 탓"


그렇다면 현지에선 한국 관광객 감소가 언제쯤 해소될 것으로 예상할까? 유후인 상점가 직원은 곧장 "문재인 정권이 끝나면"이라고 답했다.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역 주민들은 문제의 원인을 아베 총리가 아닌 문재인 대통령으로 보고 있었다. 현지 택시기사 히구마 씨는 기자에게 먼저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앞으로 2년 정도 남았죠?"라고 물은 뒤 "한국인 관광객이 다시 오는 건 2년 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베 정권이 중간에 입장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지지율이 높으니 그럴 가능성이 없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일부 주민은 양국 간 갈등이 심화되자 전임 대통령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벳푸에서 만난 상점 직원은 "여자(대통령)일 때가 더 좋았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이야기를 꺼냈고, 유후인 상점가 직원 역시 "박근혜(전 대통령) 때가 더 좋았다. 그 사람은 친일(일본과 친한 사람)이었잖느냐"고 답해 이 같은 분위기를 방증했다.


반면 취재 중 만난 유후인 상점가 직원 야야 씨는 "갈등의 원인은 아베 총리"라며 "아베 총리가 문제가 많으니까 (한국에서 불매운동이 진행된 것)"라고 지적했다. 한국 유학 경험이 있다고 밝힌 그는 "친한 한국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일본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면서도 "아베 정권의 조치 이후 일본 제품을 사고, 일본 여행을 가는 걸 한국에서 꺼려하는 것 같다"며 불매운동에 대한 인상을 전했다.


[르포]“韓정부서 일본 못 가게 하나요?”…관광도시 벳푸·유후인 삼킨 ‘정적’ 제11회 한일축제한마당 행사 중 한국인 공연자와 일본인 참가자가 함께 강강수월래 하는 모습. 사진 = 윤진근 PD

"정부가 시작한 갈등, 민간이 풀자"


아베 정부는 당초 줄어드는 한국인 관광객은 중국 또는 다른 외국 관광객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아베 정부 또한 서일본 경제가 휘청이자 사태 수습에 나섰다. 지난 4일 아베 총리가 먼저 "한국은 가장 중요한 이웃 국가"라면서 관계 개선 신호를 보냈고, 아카바 가즈요시 국토교통상은 지난달 28일 한·일 축제 한마당에서 "정부 간 문제가 생기더라도 민간교류가 활발하다면 양국의 우호 관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민간 교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수출규제 조치 후 100일. 오는 12월까지 한국인 예약자가 모두 빠져나갔다고 밝힌 유후인의 료칸 사장 하야시 씨는 "수출 규제 조치로 인한 갈등은 정부에서 비롯됐지만, 한국과 일본은 오랜 이웃나라"라며 "민간의 관계는 한 번 끊어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만큼 오해를 풀고 (한국 관광객이) 다시 일본을 찾아와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얼어붙은 한일 관계 속, 경제 직격탄을 맞은 규슈 지역 주민들은 정치와 현실 사이 깊은 시름에 잠겨있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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