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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백년가게]"비결 없는 게 비결이지요"…3대째 우탕 외길 '안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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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30년 이상 도·소매, 음식업을 영위하는 소상인 중 전문성, 제품·서비스, 마케팅 차별성 등 일정 수준의 혁신성이 있는 기업을 발굴해 '백년가게'로 육성하기로 했다. 대(代)를 이어가며 100년 전통을 자랑할 한국의 백년가게를 소개한다.


[한국의 백년가게] <27> 경기도 안성 '안일옥'

12시간 정성 가득 끓이는 우탕 전문점

20년대 장터 난전이 시초

사회·문화자산 된 안일옥

백년가게 넘어 200년·300년 꿈꿔


[한국의 백년가게]"비결 없는 게 비결이지요"…3대째 우탕 외길 '안일옥' 김종열 안일옥 대표와 부인 우미경 씨가 가게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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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아시아경제 이은결 기자] "우리 가족에겐 '국밥 유전자(DNA)'가 흐른다고 할까요. 아들은 200년, 300년 가는 식당을 만들 것으로 믿습니다."


김종열 '안일옥' 대표(59)의 꿈은 '백년가게'가 아니다. 경기도 안성시에서 3대가 99년째 이어온 우탕(牛湯) 전문점 안일옥은 내년이면 100주년을 맞는다. 부인 우미경씨(57)와 23년째 가업을 지켜온 김 대표는 이제 안일옥의 2, 3세기를 그리고 있다.


안일옥은 1920년대 김 대표의 조모인 고(故) 이승례 할머니가 안성장터에서 장날마다 가마솥을 걸어놓고 소 국밥을 판 난전이 시초다. 그날 그날 구할 수 있는 고기 부위에 따라 설렁탕, 곰탕, 소머리국밥 등을 팔다보니 우탕이라고 통칭하게 됐다.


며느리인 김 대표의 어머니 고(故) 이양귀비 할머니가 대를 이어 안일옥 간판을 달고 정식 식당으로 번창시켰다. 안일옥(安一屋)은 안성에서 제일 편안한 집이라는 뜻이다. 김 대표는 "특별한 음식 솜씨 덕분이 아닌, 그 시절 주렁주렁 달린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선대 할머님과 어머님의 '생활력'으로 지금에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


안일옥은 전국에서 5번째로 오래된 노포(老鋪)이자 경기도에서 가장 장수한 한식당으로도 알려져 있다. 장수 비결을 물었더니 '비결이 없는 것이 비결'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 대표는 "기교를 부리는 음식이 아닌 만큼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정성을 다해 만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없다"고 강조했다.


안일옥의 우탕은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소뼈와 고기 본연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딱 12시간을 정성스레 끓이고, 조미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어머니께서 생전에 '좋은 재료를 사려면 외상 하지 말고 꼭 현금을 주고 사라'고 하셨다. 냉장고를 재료로 꽉꽉 채워놓아야 손이 커진다고도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며 "평범한 말인 것 같지만 이것이 우리집의 철학"이라고 했다.


안일옥의 10여개 우탕 가운데 김 대표가 가장 자부하는 것은 '안성맞춤우탕'이다. 일명 '소 한 마리탕'이라고 한다. '오늘은 무슨 탕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 손님들을 보며 모든 재료를 한 뚝배기에 담아낸 것이다. 안성맞춤우탕에는 족, 꼬리, 도가니, 갈비, 머리고기가 들어간다.


[한국의 백년가게]"비결 없는 게 비결이지요"…3대째 우탕 외길 '안일옥' 안일옥 주방 가마솥에서 사골 국물이 펄펄 끓고 있다.

안일옥에는 이름과 달리 궂긴 사연도 있었다. 양귀비 할머니가 연로해 김 대표의 친형이 안일옥을 도맡았다가 다른 사업에 무리하게 투자하면서 1997년 외환위기 때 역풍을 맞았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김 대표가 아파트를 팔고 퇴직금을 털어 고향에 내려와 간신히 안일옥 간판을 지켰다.


이후 김 대표가 경영을 하면서도 한때 위기가 찾아왔다. 안일옥이 널리 알려지고 별 탈 없이 장사가 잘 되니 김 대표는 식당 일에 소홀해졌다. 그는 "대학원도 다니고, 시간 강사니 시의원이니 외부 활동에 한눈을 팔았다가 안 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며 "정신 차리고 도로 안일옥 '백년 지키미'로 돌아왔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제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다"며 "안일옥은 단순히 우리 일가의 소유나 생계수단이 아닌 사회·문화적 자산이 돼버렸다. 부담감도 크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향후 아들 김형우(29)씨에게 안일옥을 물려줄 계획이다. 고교 때부터 요리를 전공해온 형우씨는 외국 호텔 조리사 경력도 보유한 전문가다. 김 대표는 아들이 사회경력을 더 쌓은 뒤 가업을 맡길 예정이다. 그는 "앞으로 10년은 최선을 다해 아들에게 직업정신을 보여주려고 한다"며 "내가 선대에게 어깨너머로 배웠듯 아들도 나를 통해 스스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고 안일옥을 이끌어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안일옥을 중심으로 대물림 전통음식점의 육성 등에 관한 석사 논문도 낸 김 대표는 "사농공상 문화 때문에 부모는 고생해 장사하더라도 자식들에겐 물려주지 말자는 인식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 들어 외식업에 대한 활발한 조명으로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며 "우리도 일본처럼 장수가게가 많아지려면 정부의 행정·재정적 지원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의 백년가게]"비결 없는 게 비결이지요"…3대째 우탕 외길 '안일옥' 경기도 안성시 '안일옥'.



이은결 기자 le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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