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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신동빈은 미워도 직원들은 미워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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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희 소비자경제부장]매년 3월이 되면 많은 기업들이 주주총회 준비로 분주하다. 거의 대부분의 주식회사들은 이 시기에 주총을 한다. 3월이 '주총시즌'이라 불리는 이유다. 특히 주총이 집중돼 있는 특정일은 '슈퍼 주총데이'라고 한다.


10월5일은 '슈퍼데이'다. 주총시즌도 아니고, 주총이 열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슈퍼 공판데이'로 불려도 손색없을 만큼 거물들이 줄줄이 법원 선고를 받는다. 이날은 이명박 전 대통령,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 대한 1심이 내려진다. 그리고 지난 2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도 열린다. 신 회장의 이날 결과에 따라 롯데그룹은 오너 부재에 따른 비상경영체제를 7개월여에서 끝낼 수도, 아니면 경영 '시계제로' 상태를 이어가야 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3차 남북 정상회담. 문 대통령을 따라 줄줄이 북한으로 향하는 재계 총수들을 보며 롯데그룹 관계자들의 심정은 착잡했을 것이다. 실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서서 뇌물죄로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로 풀려났다. 지금은 대통령의 곁에서 협력자로 거듭나고 있다. 재판 결과에 승복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도리다. 하지만 신 회장이나 롯데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는 결정적 증거라던 '안종범 수첩'이 인정되지 않았다. 반면, 신 회장의 재판에서는 이 수첩이 정황증거로 판단돼 유죄의 근거가 됐다. 같은 뇌물죄에 다른 결과. 한쪽은 제시된 것이 증거가 아니라는데 다른 한쪽은 정황만으로 충분하다는 논리는 당사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삼성과 롯데의 차이일 수 있다. 롯데의 재계 위상은 5위지만, 자력으로 4만명을 고용하고 무려 180조원이나 쏟아 부을 수 있는 삼성과 견주기는 아직 부족하다. 국민 정서도 다르다. 롯데는 그간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형제의 난부터 시작해 불투명한 지배구조, 친인척의 경영비리 혐의 등으로 논란을 키웠다.

중세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크고 작은 전쟁들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그 때 돈을 받고 싸워주던 용병대들이 많은 활약을 하면서 이들을 이끌던 용병대장들은 마치 '아이돌' 같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들의 운명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용병을 사서 부리던 군주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용병대장들이 부담스러워지자, 대부분 누명을 씌워 죽였다. 용병들이 넘쳐 나던 시절, 그 자리를 대체할 다른 자들은 많았던 것이다.


올해 초부터 정부는 일자리 대책과 국내 투자 활성화를 위해 재계 굴지의 기업들에게 많은 협조를 당부해 왔다. 삼성을 비롯해 여러 기업들은 앞다퉈 투자와 고용을 약속하며 정부의 요청에 화답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재계 총수 여러 명이 검찰에 불려가는 모습을 본 기업들은 여느 때보다 적극적인 구애에 나서는 모양새다.


정부 입장에서는 대체할 기업들이 충분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롯데 하나 없다고 고용과 투자가 줄어들리는 없어 보인다. 법은 준엄하고, 판결은 공평해야 한다. 그러나 본보기를 위해 누구 하나를 골라 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롯데는 신 회장 일가의 것이 아니라 19만 임직원들의 삶에 터전이기 때문이다. 소득을 늘려 성장을 일으키고, 그래서 서민들이 잘 살게 하겠다는게 이 정부의 모토가 아니었던가.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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