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의 한복판, 예스러운 이 골목에 ‘시계골목’이란 이름이 붙은 지도 50년이 훌쩍 넘었다. 예지동 시계골목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계 전문 상가였다. 다양한 시계 구입은 물론, 수리와 광택까지 저마다 전문 분야를 가진 점포들이 모여 있다. 한때 국내 최대의 예물 상가이자 시계 기술자들의 사관학교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1960년 서울 거리에 전차가 다니던 시절, 청계천변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예지동으로 옮겨와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사과궤짝 위에 시계를 진열해 놓고 팔던 상인들로부터 시계골목의 역사는 시작됐다.
귀금속 상점들까지 하나둘 늘어나면서 1970~80년대에는 혼수 마련을 위해 찾아오는 신혼부부들로 골목은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휴대폰과 전자시계에 밀려 시계 골목은 위기를 맞았다. 시계를 사는 사람도, 시계를 고치는 사람들도 점차 줄어들었다.
거기에 재개발 광풍이 불면서 오랜 시간 골목을 지키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2006년 도시정비구역상 ‘세운4구역‘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이후 많은 상인들이 인근 세운스퀘어로 옮겨 가거나 가게 문을 닫았다. 그러나 재개발계획은 중단됐다. 서울시는 122.3m의 36층짜리 주상복합 4개 동을 짓는 건축계획안을 내놨지만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를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높다”는 이유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부결됐다.
골목은 그렇게 개발이 되지도 버려지지도 않은 채 명맥을 잇고 있다. 묵묵히 골목을 지키고 있는 상인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도 이렇게 많은 시계 장인들이 모여 있는 곳은 없다. 이곳을 없애버리기엔 정말 아깝다"고 아쉬워한다.
골목길은 대체로 한가하지만 그럼에도 시계 골목을 찾는 이는 꾸준하다. 휴대폰 시계나 디지털 시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시계 ‘맛’을 아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곳을 찾는다.
글·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김현민 기자 kimhyun8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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