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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주말/이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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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주말/이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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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시체가 있다
석양빛을 받으며 미동 없이


대문을 열면 밀려나는 위치에 있다
나는 손에 핸드폰을 쥐고 있다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졸려서 눈이 감기기 일보 직전이다

평범한 금요일의 해 질 녘이었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과 대문 사이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노인의 호통 소리가 울리고
먼 데서 가까워지는 듯한 발자국 소리

밥을 먹고 잘 것인지 그냥 잘 것인지 오는 내내 고민한 것
아무리 생각해도
내 죄는 그것밖에 없는데


내 집 앞에 시체가 있다
나는 그걸 봤고
혼자서 봤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이 시는 그로테스크하다. '그로테스크(grotesque)'는 '이상한' 혹은 '기괴한'이라는 뜻이다. 뜬금없이 "집 앞에 시체가 있다"니 정말 그렇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이 시에 등장하는 "시체"는 아무리 읽어 봐도 그 정체가 해명되지 않는다. 도대체 누구의 "시체"이고, 어떤 연유로 "집 앞"에 있게 된 것일까? 아니 그보다 시인은 왜 이 "시체"를 두고 자신의 "죄"에 대해 따져 보는 것일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집 앞"에 "시체"가 있건 말건 그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게다가 "시체"를 본 것은 오로지 시인 "혼자"뿐인데, 나 몰라라 하면 그만 아닌가. 그러나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이 시는 어떤 윤리를 향해 있다. 이 시에서 "시체"는 "주말"을 앞둔 "평범한 금요일" "해 질 녘"의 노곤한 귀갓길을 온통 "죄"로 얼룩지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짐작컨대 "석양빛"에 묻혀 있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 매일 저녁 "집 앞"에 "미동 없이" 놓여 있는 자신이 저지른 악의 귀환이다. 그러니 그것은 당연히 "혼자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려워하라. 당신의 안온한 주말 저녁은 당신이 쌓아 올린 시체들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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