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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다섯 살, 여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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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엄마, 아빠가 왜 나만 두고 이사 갔어?"


권혁규군의 여동생 A양은 다섯 살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가족은 서울에서 제주도로 귀농할 예정이었다. A양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와 함께 제주행 배에 올랐다. 그 배의 이름은 세월호.

2014년 4월16일 시간은 거기에서 멈췄다. 엄마는 숨진 채 발견됐다. 아빠 권재근씨와 오빠는 미수습자로 남았다. A양은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어느덧 3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철없는 친구들은 A양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았다. 결국 학교를 옮겨야 했다. 이름도 개명했다. 아이들은 A양의 딱한 처지를 어떻게 알았을까. 어른들의 신중하지 못한 얘기가 아이들의 행동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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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양은 엄마와 아빠 없이 힘겨운 세상을 견뎌내야 한다. 오빠라도 곁에 있으면 좋으련만…. 오빠와 아빠 그리고 남현철 학생, 박영인 학생, 양승진 선생님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뼛조각 하나라도 찾아 장례를 치러주고 싶었던 유가족은 야속한 현실 앞에서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던 유가족은 목포신항을 떠났다.


"비통하고 힘들지만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했다." 유가족은 녹이 슬어버린 거대한 쇳덩어리(세월호)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1300일이 넘는 기다림의 시간에 지쳐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유가족은 떠남을 선택한 게 아니라 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언의 압력이 선택을 강요했다. 세금을 그만 축내고 적당히 마무리하라는 사회 일각의 냉랭한 시선은 유가족을 힘겹게 했다. '돈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은 목포신항의 기다림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황량한 목포신항, 그곳은 눈물의 흔적만 남은 채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가족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그것마저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야만의 공간'과 무엇이 다른가. 국가의 존재 의미,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를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미수습자 5명의 이름을 기억해 달라." 유가족이 목포신항을 떠나며 남긴 마지막 말이다. 세월호와 같은 참담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게 유가족이 바라는 '기억'의 실천 아닐까.




류정민 건설부동산부 차장 jmryu@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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