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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덕의 디스코피아 31] Blind Faith - Blind Faith(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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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들끼리의 '한 번'

[서덕의 디스코피아 31] Blind Faith - Blind Faith(1969) Blind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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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고된 일정 때문에 고갈된 에너지, 멤버 간 불화나 음악적 지향의 차이로 크림(Cream)은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1969년 해산을 결정한 후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Jack Bruce)는 재즈성향이 짙은 첫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반면 남은 두 멤버는 한 번 더 함께 하기로 했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아직 드럼의 마왕과 헤어지기 아쉬웠던 모양이다.


클랩튼과 진저 베이커(Ginger Baker), 그리고 클랩튼과 친분이 있던 트래픽(Traffic)의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 패밀리(Family)의 릭 그레치(Rick Grech)가 모여 마침내 슈퍼밴드가 결성되었다. 이들의 결성소식만큼이나 사춘기 소녀의 상반신 누드를 사용한 재킷 역시 화젯거리-물론 안 좋은 쪽으로-였다. 재킷 속 소녀가 진저 베이커의 딸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오해다. 진짜 주인공은 재킷 디자이너 밥 시드만(Bob Seidemann)이 런던 지하철에서 만난 마리오나(Mariora)라는 열한 살 소녀다.

밴드는 1969년 6월 하이드 파크에서 첫 공연을 하고 두 달 뒤에 첫 앨범을 발표했다. 음악은 트래픽과 크림의 교집합이랄 수 있는 소울과 블루스 록의 범주 안에 자리한다. 하지만 앨범을 좀 더 듣다보면, 밴드가 음악적 항로를 모색하고자 낸 정규 앨범이라기보다는 기분전환 삼아 한 번 모여서 합주한 것을 귀동냥하는 기분이 든다. 여섯 곡뿐인 이 앨범의 러닝타임이 40분을 넘는 이유는 많은 곡들이 잼의 형식으로 연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높은 멤버들의 기량이 즉흥 연주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린다. 8분 50초인 ‘해드 투 크라이 투데이(Had To Cry Today)’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웅혼한 리프나 윈우드의 끈적한 보컬보다 4분을 넘는 기타솔로와 잼이며, 베이커가 작곡한 ‘두 왓 유 라이크(Do What You Like)’에선 무려 15분 동안 멤버들의 즉흥 연주와 솔로가 계속된다. 클랩튼의 곡인 ‘프리센스 오브 더 로드(Presence of the Lord)’에서도 멤버들의 화려한 합주가 이어진다. 처연한 멜로디 속에서 갑작스레 등장하는 역동적인 기타솔로가 멋진 반전을 만든다.

블라인드페이스는 크림의 멤버 둘이 참여한 것 때문에 ‘크림의 재림’으로 기대를 모았고 가끔씩 ‘에릭 클랩튼의 두 번째 슈퍼밴드’로 소개되는 일도 흔하다. 하지만 앨범의 주도권을 쥔 이는 윈우드다. 그는 모든 곡의 보컬을 맡은 채 앨범의 절반을 작곡했다.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다듬은 사람은 트래픽의 프로듀서인 지미 밀러였다. 외로움과 상실감을 단순한 가사 속에 담은 어쿠스틱 블루스 ‘캔 파인 마이 웨이 홈(Can't Find My Way Home)’, 오르간이 휘감은 ‘시 오브 조이(Sea of the Joy)’ 등 앨범의 곳곳에서 윈우드의 탁월한 송 라이팅 능력이 드러난다.


놀라운 기교와 합주를 들려주는 앨범이지만, 자꾸만 이 앨범이 멤버들의 기분전환일 뿐이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첫 앨범이 마지막 앨범인데다가 밴드의 활동 기간도 여섯 달에 불과했다. 베이커는 그레치와 에어포스(Airforce)를 결성했고, 윈우드는 트래픽으로 돌아가 이듬해〈존 바클리콘 머스트 다이(John Barleycorn must die)〉란 역작을 만든다. 클랩튼은 친구 밴드의 객원 멤버로 참여했다가 아예 눌러앉아 데릭 앤드 더 도미노스(Derek & The Dominos)를 결성했다. 단명하긴 했지만, 이후 멤버들의 왕성한 활동을 감안하면 블라인드 페이스가 각 멤버들 그리고 록의 역사에 생생한 에너지를 제공한 밴드였음은 확실하다. 고수들의 놀음은 한 번만으로도 충분했다.



[서덕의 디스코피아 31] Blind Faith - Blind Faith(1969) 서덕

■ '서덕의 디스코피아'는 … 음반(Disc)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독자를 위해 '잘 알려진 아티스트의 덜 알려진 명반'이나 '잘 알려진 명반의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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