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데스크칼럼]북핵과 배춧값 폭탄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22초

[데스크칼럼]북핵과 배춧값 폭탄 이초희 유통부장
AD

북한이 이래저래 사고치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안보불감증인지, 학습효과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북한이 동해에서 미사일 몇 발 쏘는 것 정도로는 국민들의 이목을 끌기 쉽지 않다.


그런데 핵(核)은 좀 다른 모양이다. 북한이 수십 년간 핵실험을 하는 동안 콧방귀만 뀌던 우리 정부. 탄도미사일의 실체가 드러난 이후에는 LTE급의 속도로 고고도미상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다. 그런데 북핵 수준의 안보위협은 아니지만 가계부에 큰 구멍을 낼만한 일이 한반도에서 또 벌어지고 있다. 철 따라 한 번씩 나오는 배춧값 파동이다. 이 또한 역대급으로 빠른 속도다.

배춧값은 한 달 만에 두 배 이상 올랐다. 배추 한 포기를 8000원에서 많게는 1만원 넘는 값에 파는 곳도 있다. 불과 올해 초만 해도 한 포기에 2000~3000원 하던 것이 지난달에는 4000원~5000원까지 올랐고 한 달 만에 배가 넘는 값을 지불하고서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배추는 주로 김치를 담가 먹는다. 이 '김치'라는 놈이 생각보다 대단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2년 집계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일 음식 중 1년간 섭취 회수가 가장 많은 게 바로 김치다. 김치는 주당 11.8회, 밥은 7회로 조사됐다. 김치를 밥보다 많이 먹는다는 얘기다.

2012년 기준으로 국민 1명이 한 해 동안 32㎏의 배추를 먹었다. 포기수로 환산하면 대략 열 포기쯤 된다. 최근 값을 적용해 보면 4만원이면 일 년 치 배추를 먹을 수 있던 것이 한 달 만에 8만원으로 오른 셈이다.


김치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다. 이미 삼국시대 이전 기록에서 채소를 발효시켜 먹는 음식이 문헌에 등장했다. 아무리 요즘 세대들이 김치를 안 먹는다고 해도 정부 통계를 보면 배추는 매년 팔리는 만큼 팔린다. 배추는 한국인들의 삶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 섭취 자원인 셈이다.


배춧값이 비싸면 김치를 적게 먹으면 될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묻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식견이다. 음식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음식 때문에 인류 역사의 물줄기가 뒤바뀔만한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중국 역사를 바꾼 '아편전쟁'은 영국이 차(茶) 수입 때문에 생긴 적자를 해소하려고 청나라에 아편을 팔다 생긴 일이다. 이 전쟁 때문에 청나라는 홍콩을 영국에 뺏겼고 수많은 유럽 열강들의 중국 수탈이 본격화됐다.


미국 독립의 발단이 된 '보스턴 차' 사건도 동인도회사가 식민지 차 판매를 독점한 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 사건은 1775년 영국과 식민지 정부 간에 무력충돌로 번졌고 독립혁명의 직접 원인이 됐다.


영국인들에게 차가 전쟁을 불사할 만큼 중요하다면 우리에게 김치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툭 하면 배춧값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니 차라리 배추도 전략물자로 분류해 정부가 적극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모든 정권들은 배춧값 안정을 약속했다. 이명박(MB) 정부시절에는 정부부처에 아예 '배추국장'을 두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이런 약속은 반복됐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모든 농산물은 정부의 수급관리 계획하에 놓여 있다. 잘못을 바로 잡는 것도, 예방하는 것도 결국 정부의 몫이다. 소비자 가격의 70%가 유통마진인 탓에 배추는 농사가 잘 되더라도 농민들의 주머니로 큰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누구를 보고 하소연해야 할까?


정부가 북한 핵문제에 발 빠르게 대응했듯 국민의 '밥상머리 안보'에도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 높으신 분들이 김치를 얼마나 먹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서민들은 자주 가는 칼국수 집에서 김치 추가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서글프다.


이초희 유통부장 cho77lov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