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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8일 이후]오해받을까 출입처 만남 꺼리고 취재 포기한 언론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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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본 김영란법 시행뒤 '3·5·10 사회'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 출입처와 저녁약속이 있을 때마다 자정이 넘어 들어오곤 했지만 저녁 9시에 귀가하니 아내도 어색했나보다. 어색하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저녁자리에서 술 대신 커피라니, 기자생활 15년만에 이런 어색한 자리는 처음이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지 일주일째. 기업의 접대비에서 식사값이 3만원 이하로 제한되면서 A 언론사 김 기자의 저녁 풍경은 확실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소맥(소주+맥주)문화가 바뀌는 듯했다. 일반식당에서 소맥을 먹으려고 해도 소주 4000원, 맥주 5000원이라 한병씩만 시켜도 9000원이다보니 소주도 저도수보다 20도 이상의 고도수만 찾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저녁에 술 마셨다고 하면 '혹시'라는 의심의 눈초리부터 받게 되자, 최근 후배들은 출입처와의 만남 자체를 꺼리고 있다.

"일 때문에 만나는 자리인데도 왜 구악기자 취급을 받는 것처럼 기분이 찝찝할까요?" 한 후배는 예비 범법자로 오인받는 것 같은 기분에 "소주 한잔 하자"라는 상대측 제안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혹자는 취재하는데 술을 왜 마셔야하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사랑고백할 때말고도 '취중진담'이 필요한 자리는 또 있다. 밝은 대낮, 맨 정신으로는 얘기할 수 없는 '사실은….'류의 현상 뒷 얘기들은 이런 술자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역사는 밤에 써진다고 했던가. 고위직들의 성추행, 막말파문, 기업 사업재편 속에 담긴 의미 등 국민의 알권리와 연결된 기사들은 대게 모두가 잠든 '새벽'에 나왔다. 밤낮없이 취재하고 마감하며 밤늦은 시간에도 노트북을 켜서 일한 기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김영란법을 계기로 그동안 이러한 수고마저 '기자들이 밤늦게 술만 퍼마신다'는 오인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일면 억울한 것도 있다.


술자리가 줄어들면서 '저녁이 있는 삶'은 가능해졌다. 저녁자리를 '업무의 연장'으로 본다면 업무량이 줄어든 셈이다.


그러나 반대로 기자들은 점점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의존해 기사를 써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식적인 통로로 답해주는 뻔한 대답에만 의존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1차, 2차로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일부 폐해가 있었을 수는 있지만, 김영란법을 통해 모든 언론인들의 술자리가 '접대'로만 비춰진 것에 대해서는 힘이 빠진 모습이 역력하다.


"우리가 거지냐? 배고파서 밥상 기웃거린 것도 아니고, 취재거리 찾겠다고 내 몸 망가지면서도 100개는 족히 되는 취재처랑 일부러 저녁자리 가면서 기사썼는데, 3만원은 되고 3만1000원은 안되고…. 앞으로는 사람도 만나지 말고 자료만 보고 기사 쓰게 생겼다!"


모 선배의 '취중진담'이 오늘 유난히 귓가를 맴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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