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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올리버 스톤이 파헤친 미국 패권주의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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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2권 출간

[Book]올리버 스톤이 파헤친 미국 패권주의의 뒷이야기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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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나는 미국 예외주의를 믿는다.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영국인들은 영국 예외주의를 믿고,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예외주의를 믿을 것이라고 본다."

2009년 4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53) 미국 대통령은 '미국 예외주의에 동의하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한다.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이 세계를 이끄는 중심 역할을 하도록 선택받은 국가'라는 뜻이다. 미국은 그 역사의 출발부터 아주 예외적이고 특별한 나라라는 선민의식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어왔다. 세계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고수하기 위해 각종 분쟁에 개입해왔던 미국의 행로에서도 '미국 예외주의'의 이념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현 대통령의 이 미지근한 대답은 당연히 기존 세력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오바마는 미국의 관점을 다른 국가에 강요해선 안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미국이 '온리 원(Only one)'이 아니라 '원 오브 뎀(one of them)'이라는 것이다. 당장 마이크 허커비(59) 전(前) 아칸소 주지사는 "미국 예외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나라의 가슴과 영혼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연설을 비난하고 나섰다. 안타깝게도 미국 사회에서는 오바마와 같은 입장을 가진 이들이 '원 오브 뎀'이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미국 예외주의, 미국식 이타주의, 자유와 정의에 대한 소명 등으로 뒤덮인 역사를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우며 자라왔다. 할리우드 영화와 TV프로그램, 신문과 뉴스 등을 통해 '아메리칸 정신'은 지금도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편향된 관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7월4일생', 'JFK', '닉슨', '플래툰' 등 미국 현대사를 재조명한 작품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68)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12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우드로 윌슨(1856-1924)을 시작으로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100여년의 미국 현대사를 12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풀어냈다. 제목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2012)'다. 여기에 미국 아메리칸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인 피터 커즈닉이 힘을 합쳐 같은 내용을 1000페이지 분량의 책으로도 엮어 냈다. 책에서 이들은 미국 역사에서 흘러온 패권주의의 추악한 이면을 다양한 자료와 사진들로 검증해나간다.


저자들은 미국 현대사가 '미국의 세기'를 추진하는 세력과 '보통 사람의 세기'를 추진하는 세력 간의 끊임없는 대결로 진행돼왔다고 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전자가 승리했다. 미국은 초기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정착-성장-정복의 과정을 거치면서 팽창주의를 고수해 나갔다. 19세기 들어서는 자국 내 경기불황을 타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해외 영토 확장에 눈을 돌렸다. 하와이, 괌, 필리핀, 푸에르토리코가 차례로 미국 손으로 넘어갔다. 이 팽창주의는 현재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들이 이어가고 있는데, 세계 각국에 설치해놓은 1000여 곳이 넘는 '군사기지'가 그 증거물들이다.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전쟁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한동안 제국의 길을 고수할 것이다.


미국이 '보통 사람의 세기'를 걸을 수 있는 기회도 여러 차례 있었다. 저자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정부 당시 부통령이었던 헨리 W. 월리스(1888-1965)를 주목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내세웠던 반소 및 반공정책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오히려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을 동맹국 소련에 대한 배신이라며 비난했다. 이 사건으로 상무장관직에서도 물러나게 된 월리스는 이후 진보당을 결성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마했다.


또 다른 인물은 존 F. 케네디(1917-1963) 대통령이다. 1962년 '소련의 핵미사일을 미국의 코앞인 쿠바에 배치하겠다'며 촉발된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케네디는 기존의 노선을 과감하게 변경했다. 냉전의 긴장을 완화하는 여러 조치를 취했고 중남미와의 협력 관계 구축에도 나섰다. 하지만 케네디마저 이 같은 정책 전환에 반발한 수많은 적들에 둘러싸여 암살당하는 바람에 '보통 사람의 세기'는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케네디가 적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1944년 헨리 월리스가 미국과 세계를 평화와 번영의 길로 이끌려고 했을 때 제동을 걸었던 세력들과 흡사하게 진보적인 변화를 열렬히 거부했다. (중략) 케네디의 죽음과 더불어 횃불이 다시 낡은 세대에게 넘어갔다. 존슨, 닉슨, 포드, 레이건의 세대다. 이들은 케네디보다 나이는 별로 많지 않지만 케네디가 집권 시절에 보여준 희망의 싹을 조직적으로 파괴하면서 미국을 다시 전쟁과 억압의 방향으로 돌려놓는다."(p 530)


다시 미국의 현재로 돌아와 보자. 여전히 "미국식 군사 만능주의와 제국주의가 미국인과 나머지 세계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날"이 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식 예외주의'에 대해 주목할 만한 입장을 보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서는 한줌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오바마가 과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헨리 월리스 부통령,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모범을 보인 전통의 상속자가 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올리버 스톤은 마치 영화 한 편을 옮겨놓은 듯 미국의 추악한 흑역사를 드라마틱하게 활자로 펼쳐낸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 상식이 얼마나 일방적인 지배 논리에 따른 것인지 깨닫게 된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1~2권 / 올리버 스톤, 피터 커즈닉 지음 / 이광일 옮김 / 들녘 출판사 / 각권 2만2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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