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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웬수' 소리는 그래도 당신뿐이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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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남자가 사는 법]

[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 ‘내가 아는 사람 얘기’를 해야겠다. 그냥 아는 사람이다. 부부간 은밀한 얘기라 익명으로 한다. 이사람 부부동반 모임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대부분 40-50대 남자들이 그렇듯 경제적으로 넉넉한게 아니다. 이런 저런 일로 돈도 꽤 까먹었다. 자기 딴엔 열심히 살지만 대출상환, 얘들 등록금, 부모님 봉양등으로 늘상 허덕인다. 와이프가 뭘 사고픈 지, 하고픈 지 알지만 애써 모른채 한다. 아내도 사정을 아니 참고 넘어간다. 부부동반 모임만 다녀오면 말썽이 난다.


그날도 그랬다. 강남의 우아한 레스토랑에 초대를 받았다. 강북토박이지만 강남구경할 때가 가끔 있다. 네쌍의 부부가 남자들 여자들로 나뉘어 식사와 대화를 했다. 기분좋은 모임이 끝나고 각자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내가 운전을 하고 아내는 조수석에 앉았다. 거울을 보는 표정이 심상치 않다. “나 눈밑이 자글자글 하지?” 아내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아니 이뻐”하며 급수습한다. “아니야 주름이 만만치 않아”. 이럴 때 아내의 속은 안들여 보다도 뻔하다. “저 화상이 나를 고생시켜서 내가 이꼴이 됐어” 라고 생각한다. 지난 20여년동안 나의 잘못을 주마등처럼 떠올린다.


어! 나라고 했네. 진짜 내가 아닌데. 감정이입을 하다 보니 그랬다. 그런데 어떻게 잘 아냐고. 나한테 시시콜콜 얘기하는 친한 사람이다. 유치하지만 현장감을 높이다보니 내얘기처럼 했나보다.

다시 돌아가 보자. 그사람 아내 말로는 다른 아내들은 뭘했는지(보톡스!) 피부가 탱글탱글하다. 여성호르몬 주사도 맞고 있단다. 얼굴도 젊어 보이고 삶도 활기차 보인다고 부러워한다. 여기까진 괞찮다. 그런데 "난 뭐야"소리가 나오면 안된다. 그전에 상황을 반전시켜야 한다. '여성호르몬 주사'를 반전의 기회로 삼았다. "여성호르몬을 맞는 것은 갱년기가 와서야. 당신이 갱년기가 늦은 이유는 다 내덕분이야"라고 뒤집기를 시도했다.


뭔소리냔다. 내가 열심히 당신을 사랑해 줘서 천연 여성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에 갱년기가 늦은 것이라 설파했다. 호르몬을 맞는 다른 분들은 아마도 바깥양반들이 바쁘다 보니 부부의 정을 나눌 기회가 드물거나 없을게 분명하다고 설래발을 쳤다. 세분을 무기력자로 만들었다. 이해를 바란다. 그 땐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아내는 예쁘고 착하다. 내가 팔불출이 아니고 진짜 그렇다. 단점이라면 약간 귀가 가볍다. 아내가 넘어왔다. "어이그 웬수".


성공했다. "웬수"는 중년남성들에게 부분적 성공의 상징이다. '아내들의 네가지 바가지'란 유머가 있다. 돈도 못벌고 잠자리도 시원찮은 남편에게는 "네가 나한테 해준게 뭔데"라고 한단다. 돈만 잘버는 남편은 "밥만먹고 사냐"는 지청구를 듣는다. 둘다 잘해도 "그래 너 잘났다'는 타박이 기다린다. "웬수'는 돈을 잘벌지는 못하지만 절반의 성공을 거둔 남성들의 월계관이다. 아줌마를 속물로 보는 이런 유머에 나는 공감하지 않는다. 진짜로.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맞아 맞아'하며 낄낄 웃는다. 이런 속물들.


근데 내 얘기 같다고. 아니라니까. 또 비슷한 처진데 누구면 어떤가. 내가 너고, 네가 나다. 도낀 개낀 비슷하다. 자꾸 따지는 행위는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태도다. 건강에 좀 더 신경쓰자는 취지다. 무라야마 하루끼는 "재능은 두 번째고 체력이 우선이다"고 말했다. 우리 선조들은 "남자가 아침에 기둥을 세우지 못하면 돈도 꿔주지 말라"고 했다. 남자의 밑천이 건강이란 말이고 건강의 징표하나를 얘기했을 뿐이다.


100세시대라면 앞으로도 반세기나 살아야 하니 건강부터 챙겨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뭘할지를 생각할 수 있다. 친구중에 부부가 함께 헬스클럽에 다니는 '너 잘난 놈'이 하나 있다. 건강하고 그렇게 금슬이 좋아보인다. 나도 건강을 지키고 위해 세종청사에 있는 헬스클럽을 새해들어 열심히 다니고 있다. 끽해야 웬수지만 그게 어디냐.


큰아이가 논산훈련소에 들어가 아내와 바라다 주고 왔다. 요즘 엄마들 쿨해서 우는 엄마 찾기 힘들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들 둘을 낳을 때는 금메달이었다. 세상이 바뀌어 이젠 아들 둘이면 목매달이란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의 표정이 쓸쓸하다. 아들 얘기하면서 거울을 본다. 그때와 달리 눈가의 잔주름이 안보이나 보다. 아들생각 때문이겠지. 아내를 위로하려고 농을 건넨다. "우리 딸하나 낳을까". 아내가 째려본다. " "푼수처럼 왜 그래". 웬수가 아니라 푼수라네. 푼수와 웬수가 비슷한 말인가?




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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