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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환율전쟁 브레이크 잡았다… G20에 '심폐소생술'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39초

시장결정적 환율·IMF 지분개혁 역사적 합의… 구속력 숙제로

[아시아경제 경주=박연미 기자] 경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가 끝난 23일 오후. 경주 힡튼호텔 바(BAR) 스타즈(STARS)에 세계 환율전쟁을 막아낸 역전(歷戰)의 용사들이 모여들었다. 총사령관으로 나서 "환율전쟁 종식"을 선언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재정부·서울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실무진들이 한 달여의 숨막히는 중재전을 마친 날. 이들은 자정이 다 될 때까지 잔을 기울이며 후일담을 풀어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정부 관계자는 "어깨의 짐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었다"고 했다. 'G20 무용론'과 '얼굴마담'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조소(嘲笑) 속에 고심했을 당국자들의 속내가 읽혔다.

한 고비를 넘겼지만 여전히 환율 문제로 이견이 팽팽하던 상황, G20 재무장관들은 이 날 예상을 뛰어넘는 합의를 이뤘다. 회의 후 발표한 커뮤니케(공동 선언)에는 ▲시장 결정적인(market determined) 환율제도를 이행하고 ▲경상수지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예시적인(indicative)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국제통화기금(IMF) 지분 6% 이상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중국 등 신흥국으로 양보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강제성이 없어 구속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남지만, 상징적인 의미는 부인하기 어렵다는 게 공통된 시선이다.


윤 장관은 성명을 발표하며 "거시건전성 부문에서 시장의 역할이 더욱 강화됐고 그간의 환율 논쟁은 이것으로 종식이 됐다"고 선언했다. 프랑스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오늘은 한국의 날이자 IMF의 날"이라며 말을 보탰다.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를 3주 앞두고 열린 경주 회의. 결과를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달 15일 이후 G2(미국과 중국)가 한 발씩 물러나며 파국은 피하는 듯했지만 환율 문제가 길을 막아 성과는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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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시장에 맡긴다


회원국들은 치킨게임(한 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경쟁)으로 흘러가는 듯했던 환율전쟁의 끝자락에서 다시 한 번 시장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6월 토론토 정상회의때 언급한 '시장지향적'(market oriented) 환율제도에서 한 발 나아가 '시장결정적'(market determined) 환율제도를 이행하자고 약속했다.


언뜻 비슷하게 들리는 두 표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윤 장관은 "환율 결정 과정에 시장의 역할이 더욱 강조된 것"이라며 "거시건전성 부문에서 시장의 역할이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정부의 한 실무진은 "전자가 시장 중심으로 환율이 결정되도록 하되 필요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면, 후자는 극단적인 변동성이 있는 상황이 아닐 경우 환율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회의 직후 일본 언론들이 "이번 합의로 엔고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가로막힐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산케이(産經)신문은 24일 "이번 회의에서 일본만 손해를 봤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경상수지 가이드라인 신설


위안화 절상 문제로 사실상 서구사회 전체와 대척하던 중국에 숨통을 틔워주면서도
환율 문제를 구조적으로 풀 수 있는 우회로도 뚫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나 적자 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자는 한국의 아이디어를 미국과 중국이 받아들이면서다. 경상수지 규모에 따라 달러화 유입량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는 환율 움직에 사실상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회원국들은 당초 기준치로 검토하던 4%안에는 합의하지 못했지만, 예시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기준에 어긋나면 IMF의 조사에 응한다는 선까지 진전을 봤다. 경상수지를 포함해 몇 가지 경제지표를 기준으로 정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


정부는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가이드라인이 구체화되기를 희망하지만 욕심은 내지 않기로 했다. 내년도 프랑스 정상회의로 공을 넘긴다고 해도 한국의 리더십은 이미 충분히 공인이 된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특정 국가(중국)의 환율 문제를 콕 집어 말하면 일단 그 나라의 환율이 잘못된 것으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중국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라며 "환율 문제를 해결 못하면 G20 의장국인 한국의 리더십이 상처받는 듯한 상황에서 잡은 방향이 무역불균형을 줄이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무역불균형을 줄이는 방안에는 환율 조정 말고도 재정 정책이나 내수 확충 등 다양한 수단이 동원될 수 있어 중국도 받아들이기가 수월했을 것"이라며 "앞으로 가이드라인이 정해지면 물가목표범위를 정하듯 각 국이 일정 범위 안에서 경상수지 규모를 스스로 조정하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IMF, 신흥국 '볼륨 업'


환율 쟁점이 부각되기 전까지 가장 첨예한 이슈였던 IMF의 쿼터(지분) 조정에서도 큰 진전이 있었다. 회원국들은 2013년 1월까지 IMF의 쿼터 6% 이상을 신흥국에 양보하기로 했다. 상임 이사자리 2석도 함께 넘긴다. 기대 이상의 결과다.


지난해 9월 피츠버그 정상회의는 'IMF 쿼터의 최소 5%를 과다대표국에서 과소대표국(신흥국)으로 이전한다'는 합의를 이루며 IMF 개혁에 속도를 냈지만, 이후 문구의 해석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했다. 조정 시한으로 잡은 11월 서울 정상회의때까지 방점을 찍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잖았다. 경주 합의는 세계 경제의 중심 축이 유럽에서 신흥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상징적인 증거다.


이에 따라 IMF내에서 신흥국들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게 됐다. 특히 중국의 쿼터 비중은 종전 6위(3.996%)에서 3위로 껑충 올라갈 전망이다.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들의 쿼터 비중도 모두 10위권 이내로 올라서게 됐다.


반면 8위였던 사우디아라비아(2.930%)와 9위였던 캐나다(2.672%)는 경제력대비 과다대표국으로 꼽혀 10위권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8위(1.412%)였던 한국은 16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당초 예상(15위)보다는 저조한 성적인데 정부는 "의장국으로서 양보와 타협을 강조하면서 제 몫을 챙기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9개의 이사석을 확보하고 있던 유럽은 미국과 신흥국의 공세에 이사직 2석도 양보하기로 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덴마크 등이 이사직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


중국 등 신흥국이 큰 소득을 얻어갔지만 IMF 쿼터 개혁을 환율 문제의 반대 급부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실리를 챙기게 돼있어 이번 회의 결과를 쿼터와 환율의 빅딜로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미국도 일부 쿼터를 내놨지만 여전히 15% 이상의 비중을 확보해 1위 자리를 지키게 됐다. 비토권을 유지할 수 있는 비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2일(현지시각) '신흥국이 G20 회의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Emerging Nations Gain in G20)'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회의가 IMF 내 신흥국들의 발언권을 강화시켜 줬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23일 "G20 재무장관들이 예상을 깨고 IMF구조 개혁안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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