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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샤플라니르, 南아시아 女가장 일자리나누기 선도

참 짓궂은 날씨였다. 지하철 역에서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장대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곳은 '샤플라니르(shapla neer)'. 샤플라니르는 방글라데시, 네팔 등 남아시아 현지에 공장을 세워 현지의 여성 가장들을 위주로 노숙자와 고아·노인·장애인 등 현지의 사회취약계층을 고용해 그들이 만든 제품을 일본으로 들여와 판매해 수입을 올리는 사회적기업이다.


도쿄(東京) 소재 일본의 유명대학인 와세다 대학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샤플라니르 사무실에 들어서니 천둥번개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바깥과는 달리 별천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30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아늑하고 화사한 조명아래, 해외활동팀과 국내활동팀·총무 회계팀·홍보팀과 인사팀·지원기획팀·크래프트 링크 팀 등이 한 사무실에 옹기종기 모여 일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사무실 곳곳에는 옷과 생활소품들을 걸어둔 행거들이 어수선하게 놓여있어 취급 품목을 대략 짐작케 했다.


캐주얼한 복장과 자유로운 헤어스타일의 남자 직원들과 함께 자사 제품인 듯 보이는 셔츠와 원피스를 입은 여직원들이 환한 모습으로 기자를 반겨준다.

현재 이곳에 근무하는 인원은 대표인 사무국장 쓰쓰이 데쓰로(筒井哲朗)를 포함해 총 13명.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연간 2억4300만엔(약 32억3300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엄연한 중소기업이다.


샤프란니르의 핵심 부서는 크래프트 링크 팀이다. 크래프트 링크 팀은 방글라데시와 네팔에 있는 수공예품 공장 총 15곳의 생산라인을 관리하며 제품 주문·판매·제품 아이템 제공 등에서 현지와 일본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크래프트 링크의 책임자, 여기선 치프라 불리는 고마쓰 도요아키(小松豊明) 씨는 이 역할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일본의 북쪽 홋카이도(北海度) 삿포로(札幌) 출신 뮤지션이었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샤플라니르와 뜻을 같이 하게 되면서 도쿄로 날아온 지 벌써 7년째를 맞고 있다. 몇 년 동안 네팔 공장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으면서 현지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한 만큼 이 일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고마쓰 씨는 "정성을 담아 만든 수공예품으로 '만든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며 "우리 제품을 사는 것은 남아시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고마쓰 씨를 따라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사무실 크기의 몇 배나 되는 창고가 나타났다. 안을 둘러보니 창고에는 아직 세상구경을 하지 못한 제품들이 천장까지 빼곡히 쌓여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티셔츠·스커트·원피스 등의 의류와 모자·헤어밴드·벨트·슬리퍼·앞치마·가방 등 직물로 짤 수 있는 온갖 제품이 구비되어 있었다.


고마쓰 씨에 따르면 제품들은 주로 인터넷과 카탈로그를 통한 통신 판매로 이뤄지고 있으며, 바자회나 일본 각지에서 열리는 전통축제(마쯔리) 때 위탁을 통해서도 판매되고 있다. 수입금은 직원 월급 등 회사운영 이외에도 일본 국내외의 긴급구제활동에도 사용된다.


고마쓰 씨는 "눈을 돌려보면 우리 주변에는 모든 것이 풍족하다 못해 넘쳐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들 대부분은 낡아서 못쓰는 것이 아니라 새 것에 밀려 쓰지 않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따라서 우리 자신만을 위해 소비하던 것을 조금만 나누면 세상의 온도를 높일 수 있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그는 한 예로 네팔 주재원 시절 만났던 현지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네팔의 공장에서 일하던 블론 비비라는 한 여성 가장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4남매의 가장이 됐다. 그녀의 불행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됐다. 결혼한지 10년 만에 이유도 없이 남편이 집을 나가 슬하의 자녀 2명을 홀로 키워야 하는 처지가 된 것. 설상가상으로 병약한 여동생의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뜨자 그녀와 함께 세 딸까지 돌보는 대가족의 가장이 됐다. 살길이 막막했던 그녀에게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샤프란니르는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 하지만 샤프란니르에서 받는 월급은 7명의 생계를 이어가기엔 너무나도 빠듯한 살림살이다. 그럼에도 비비 씨는 "신은 나에게 많은 행운을 주었다"며 매달 월급날만 되면 감사인사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을 잘 쓰면 세상을 바꾼다'라는 샤플라니르의 운영철학이 깊숙이 와 닿는 대목이었다.

배수경 기자 sue68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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