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주기자
올해 상반기까지 주춤했던 국내 외식·식음료(F&B)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하반기부터 분주해졌다. 한동안 매물은 쌓였지만 거래는 멈춰 섰던 F&B 시장에서 잇단 새 주인 찾기가 이뤄지며 분위기가 반전되는 모습이다. 고금리와 소비 둔화로 위축됐던 시장 환경 속에서도, 실적이 뒷받침된 브랜드를 중심으로 거래가 다시 성사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KFC코리아는 최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이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새 주인을 맞았다. 거래 금액은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2000억원 안팎으로 보고 있다. 기존 대주주였던 오케스트라PE는 2023년 약 700억원에 KFC코리아를 인수한 뒤 2년 만에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성공했다.
KFC코리아는 직영점 위주의 운영에서 벗어나 가맹 사업을 본격화하며 고정비 부담을 낮췄고, 키오스크·앱 주문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인건비를 절감했다. 그 결과 인수 당시 수십억원대에 머물던 영업이익은 최근 400억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KFC코리아는 글로벌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얌브랜즈와 마스터프랜차이즈(MF) 계약을 맺고 국내에서 20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칼라일은 이번 KFC 인수를 통해 카페 중심이던 포트폴리오를 외식 전반으로 확장하며 기업가치 제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2021년 전국 1700여 개 매장을 보유한 카페 브랜드 투썸플레이스를 인수한 바 있다.
미국 프리미엄 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의 국내 운영사 에프지코리아도 최근 사모펀드 운용사 에이치앤큐(H&Q) 에쿼티파트너스와 지분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2023년 6월 파이브가이즈를 국내에 들여온 지 2년 반 만이다.
현재 국내 8개 매장을 운영 중인 파이브가이즈는 지난해 기준 영업이익 33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예상 매각가는 600억~700억원으로, 누적 투자액이 200억원 안팎임을 감안하면 기업가치가 세 배 가까이 뛴 셈이다. H&Q코리아는 국내 매장 운영뿐 아니라 일본 내 독점 사업권까지 포함된 구조를 높게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본사의 사업 구조 재편이 국내 M&A로 이어지는 사례도 나타났다. 샌드위치 브랜드 써브웨이는 최근 한국 사업을 직영 체제에서 마스터프랜차이즈(MF) 방식으로 전환하고, 도미노피자를 운영하는 청오DPK의 계열사 청오SW를 국내 사업자로 선정해 MOU를 체결했다. 청오SW는 향후 써브웨이 국내 매장 운영과 가맹점 관리 전반을 맡게 된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을 운영하는 엘비엠(LBM) 역시 사모펀드 운용사 JKL파트너스를 새 최대주주로 맞았다. 지분 100% 기준 거래 금액은 약 2000억원으로, 지난해 EBITDA 등을 감안한 기업가치는 1700억원 안팎으로 평가된다.
파이브가이즈 용산. 에프지코리아
이 같은 거래가 하반기 들어 집중된 배경으로는 외식 업황이 최악의 국면을 통과했다는 인식이 확산된 점이 꼽힌다. 고물가·고금리 여파로 소비가 급격히 위축됐던 상반기와 달리, 하반기 들어서는 매출 감소폭이 둔화되고 점포당 수익성이 안정된 브랜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실적 가시성이 높아지면서 리스크를 보다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밸류에이션 조정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점도 거래 성사의 핵심 요인이다. 과거 성장 기대를 앞세운 고평가 논란이 정리되며, EBITDA 등 현금창출력을 기준으로 한 현실적인 가격대에 매도·매수자 간 공감대가 형성됐다. IPO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사모펀드의 엑시트 수요와 신규 투자 여력이 맞물리며 협상이 빠르게 진전됐다는 분석이다.
다만 모든 F&B 매물이 거래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버거킹, 한국피자헛, 리치빔(피자나라치킨공주), 노랑푸드(노랑통닭), 명륜당(명륜진사갈비), 이랜드이츠의 다이닝·디저트 브랜드 9개(반궁·스테이크어스·테로 등) 등도 M&A 시장에 이름을 올렸지만 아직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특히, 노랑통닭 운영사 노랑푸드는 최대주주인 큐캐피탈파트너스와 코스톤아시아가 지분 100% 매각을 추진하며 필리핀 외식 기업 졸리비그룹과 협상을 벌였지만, 가격 눈높이를 좁히지 못하고 최종 결렬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하반기 들어 거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선별적"이라며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법적·운영 리스크가 남아 있는 매물은 여전히 시장의 문턱을 넘기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