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맞아?' 세계를 놀라게 한 복원 화가, 뒤늦게 전해진 소식

'원숭이 예수' 복원 화가, 94세로 별세

밈 인기에 오페라까지 제작, 논란은 여전
실패한 복원 덕분에 마을은 관광 명소로

예수의 얼굴을 원숭이를 닮은 모습으로 바꿔놓아 전 세계적으로 논란을 낳았던 세실리아 히메네스가 94살의 나이로 영면했다. 30일(현지시간) BBC와 가디언 등 외신은 스페인 성당 벽화 복원 과정에서 예수의 모습을 원숭이처럼 바꿔놓아 전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스페인의 아마추어 화가 세실리아 히메네스가 별세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012년 히메네스는 스페인 아라곤 지방 보르하 마을의 미세리코르디아 성지(Santuario de Misericordia) 성당에서 19세기 벽화 '에케 호모(Ecce Homo)' 복원을 맡았다. 해당 벽화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훼손이 심각했지만, 성당 측은 전문 복원가가 아닌 독실한 신도이자 아마추어 화가였던 히메네스에게 작업을 맡겼다.

19세기 화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의 ‘에케 호모(Ecce Homo)’의 손상된 버전(왼쪽), 그리고 세실리아 히메네스가 복원한 버전(오른쪽)의 비교 모습. APF연합뉴스

그러나 복원 결과는 원작과 크게 달랐다. 예수의 얼굴은 윤곽이 무너지고 눈과 입이 뭉개진 형태로 남았고, 해외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 (SNS)에서는 '원숭이 예수(Monkey Christ)', '역사상 최악의 미술 복원'이라는 혹독한 평가가 쏟아졌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당시 비난 여론으로 인해 히메네스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체중이 약 17㎏이나 줄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종교 예술 훼손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일부 가톨릭 신자들은 "성스러운 예수의 얼굴을 모독했다"며 분개했다. 미술계 또한 "문화유산 관리의 부실함을 드러낸 사례"라고 비판했다. 일각서는 벽화는 이미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였으며, 그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옹호 의견도 나왔다.

19세기 화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의 ‘에케 호모(Ecce Homo)’의 원본. APF연합뉴스

흥미롭게도 '실패한 복원'은 마을의 운명을 바꿨다. 엉성한 그림이 인터넷 밈(meme)으로 확산하면서 성당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BBC 보도를 보면, 연간 방문객이 5000명 수준이던 보르하 마을에는 2013년 한 해에만 4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렸고, 약 60만 유로의 수익이 발생했다. 이 수익은 지역 자선단체와 문화 보존 기금으로 사용됐다. 저가 항공사 라이언에어가 성당과 가까운 사라고사 공항에 특별 항공편을 편성할 정도로 관심이 이어졌다. 현재도 '에케 호모' 벽화를 보기 위한 방문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실패한 복원은 인터넷 밈(meme)으로 확산하면서 성당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현재도 '에케 호모' 벽화를 보기 위한 방문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AFP연합뉴스

히메네스는 시간이 흐른 뒤 이 악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성당에서 판매되는 기념품과 관련 이미지의 저작권 수익을 나누는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마을 관광 홍보를 맡는 명예직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기술적으로는 원작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이미 이 그림 자체가 현대 문화 아이콘이 된 만큼 복원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이 사건은 예술의 가치와 실패, 그리고 대중문화의 힘을 상징하는 사례로 남았다. 2023년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 '보라, 이 사람을(Ecce Homo)'가 초연되며 또 한 번 재조명되기도 했다. 조롱의 대상에서 지역을 살린 상징으로 바꾼 세실리아 히메네스의 삶은 오늘날 인터넷 시대가 한 개인의 실수를 어떻게 전 세계적인 문화 현상으로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될 전망이다.

이슈&트렌드팀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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