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슬기나기자
정부가 고환율의 원인 중 하나로 '서학개미'를 지목하며 국장 유턴을 유도하기 위한 세제 혜택까지 내놓자, 증권가에서는 해외주식 거래를 둘러싼 마케팅 경쟁에 급제동이 걸렸다. 고환율 국면에서 해외주식 투자 자체가 정책적으로 민감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증권사들도 관련 영업 전략을 시급히 재조정하는 모습이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당초 내년 3월까지 진행 예정이었던 해외주식 순입고 이벤트를 최근 중단했다. 이는 타 증권사 계좌에 보유했던 해외주식을 옮겨와 거래할 경우 현금을 지급하는 프로모션이다. 또한 한국투자증권은 이달 말까지였던 달러지급 이벤트도 예정보다 빨리 종료했다.
해외주식 관련 프로모션을 급히 중단하고 나선 것은 한국투자증권만이 아니다. 키움증권은 최근 '33달러 받고 미국 주식 시작하기', '비대면 계좌 3개월 무료 수수료 이벤트' 등의 이벤트를 종료한 데 이어, 텔레그램 채널 '키움증권 미국주식 톡톡'도 폐쇄하기로 했다. 해당 채널의 구독자는 약 3만7000명으로 증권사 텔레그램 채널 중 구독자가 가장 많았었다.
NH투자증권과 삼성증권 역시 미국을 비롯한 해외주식 투자 이벤트를 중단했다. 메리츠증권은 비대면 전용계좌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 적용해온 미국주식 수수료 제로 이벤트를 다음 달 중 조기 종료할 예정이다.
이는 고환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서학개미를 지목하고 해외로 빠져나간 개인투자자 자금을 국내로 되돌리고자 하는 최근 정부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해외 투자 실태 점검 중간결과'를 발표하고 증권사들의 해외주식 투자 유치 경쟁이 과도하다고 직접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여기에 기획재정부는 24일 '국내투자·외환안정 세제지원 방안'을 통해 국장에 복귀해 1년 이상 투자하는 서학개미에게 해외주식 양도소득세(20%)를 1년간 한시적으로 부과하지 않겠다는 대책까지 발표했다. 한도는 1인당 5000만원이다.
증권사들로선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경고에 서학개미를 타깃으로 한 정부의 환율방어 기조까지 강해진 분위기에서 더 이상 해외주식 거래를 독려하거나 관련 홍보를 이어가기 어려운 환경이 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관련 마케팅, 영업전략 자체를 수정하고 있다"며 "새해를 맞아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기는 하나, 당국의 압박이 배경이 된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해외주식을 중심으로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해온 증권사들로선 당국의 압박에 난감한 분위기가 더욱 역력하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확인된다. 국장 복귀 시 세제 혜택을 주는 조치에는 환영을 표하면서도, 증권사 프로모션까지 사실상 강제 중단시키고 개인의 투자에 관여하는 것이 옳냐는 반문이다. 한 30대 투자자 A씨는 "투자자 입장에서 성장성이 높은 미국 주식을 사는 것은 글로벌 시대에 당연한 흐름"이라며 "지금 정부가 내놓고 있는 방식은 흡사 현대화만 막는 '쇄국정책'과도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해외주식 투자 과열을 막겠다는 취지와 달리, 상대적으로 신뢰성 있는 증권사 차원의 해외주식 관련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 다른 투자자 B씨는 "과도하게 증권사 옥죄기에 나서면서 괜히 혜택도, 정보도 줄어들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