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영기자
송승섭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9일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먼저 최저임금보다 많은 적정임금을 지급하고,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꼼수 채용을 하는 부처가 없는지 확인하라는 지시도 덧붙였다.
또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법왜곡죄 신설 등 더불어민주당이 속도 조절에 들어간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국민의 뜻에 따라 처리해나가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밝히는 한편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예로 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권을 부여해 과태료를 현실화하는 등 경제제재를 현실화할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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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적정임금을 줘야 하는데, 정부는 똑같은 일을 시켜도 정규직이나 고용안정이 있는 쪽에 임금을 더 많이 준다"며 "원래는 반대가 돼야 한다. 고용안정이 떨어지면 임금을 더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호주의 사례를 들며 "합리적인 사회는 똑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에 더 많은 임금을 준다"면서 "우리는 (비정규직에) 임금을 더 적게 준다. 50~60% 적게 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게 우리 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근로자를 채용할 때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관행도 시정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일용직이나 비정규직에는 예외 없이 최저임금을 주더라"며 "최저임금은 절대 그 이하로 주면 안 되는 금지선이지 권장 임금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적정하게 노무에 상당한 대가를 줘야 한다"면서 "뭐든 최저임금을 주는 게 마치 잘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럼 안 된다"고 얘기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는 "정부가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고용부가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동시에 고용부와 소속기관이 임시 근로자를 채용할 때 적정임금을 주고 있는지, 다른 정부 부처와 공기업이 임금을 어떻게 지급하는지 등을 조사하라고 주문했다.
이른바 '쪼개기 계약' 관행에 대해서는 "정부가 부도덕하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도 (채용) 2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된다고 1년 11개월 만에 다 해고한다"면서 "퇴직금을 안 주기 위해 11개월 계약하고 한 달 쉬었다 다시 고용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상적으로 일할 자리는 정규직으로 뽑으라"면서 "노동부가 잘하는지, 다른 부처는 그렇게 하는지 챙겨보고 시정 명령하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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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이 대통령은 입법 과정에서 갈등이 있어도 국민의 뜻에 따라 필요한 일들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특별법안을 포함해 법왜곡죄 신설법안,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등에 대해 야당이 강하게 반발해 입법에 제동이 걸린 점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여야 합의로 내년 예산안을 법정시한 내에 처리한 점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도 "입법을 두고 견해를 달리해도 국민적 상식과 원칙을 바탕으로 주권자인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해서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개혁이라는 것은 원래 가죽을 벗긴다는 뜻"이라며 "갈등이 없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면), 불합리한 것들을 정상화하려면 약간의 갈등과 저항은 불가피하다"고 부연했다. 이에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입법과 관련된 의견은 언제나 국회의 의견을 존중하고 논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며 "(이 대통령의 발언은) 국회 내 입법 과정에서 늘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 대변인은 "정부가 출범하면서 6가지 개혁과제를 제시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당연히 불편함과 조율해야 할 부분이 나타나게 마련이지 않겠냐"면서도 사법개혁과 관련한 개별 발언은 없었다고 전했다.
오는 11일부터 진행하는 전 부처 업무보고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방침도 전했다. 이 대통령은 기획재정부를 시작으로 연내에 300개에 가까운 부처 및 산하 공공유관기관 등에 대한 업무보고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 업무보고를 통해 민생경제 회복과 국가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대한민국 대전환을 한 걸음이라도 앞당기겠다"며 "국민의 알 권리와 투명한 국정운영 실현 원칙에 따라서 보안을 지켜야 할 사항 빼고는 업무보고 내용 전반을 다 생중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은 6대 핵심 분야 개혁을 필두로 국민 삶 속에서 국정 성과가 몸으로 느껴지고, 국민 행복으로 이어지는 국가 대도약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 K컬처 열풍으로 K푸드에 대한 관심 날로 높아지고 있다면서 수출에 첨병이라 생각하고 준비를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입맛을 사로잡는 것은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라 한다"면서 "K푸드가 내수를 넘어서 전략수출산업으로 지속 성장하도록 정부가 K푸드 비상을 든든하게 돕겠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부처에는 해외 마케팅, 물류 지원, 관광연계상품개발,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같은 종합지원 방안 마련해달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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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비공개 회의에서는 공정위에 강제 조사 권한을 부여해 과태료 등 경제제재를 현실화할 방안을 검토하라고 법제처에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예로 들며 "현재 형법 체계의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경제제재를 통한 처벌 현실화를 위해 강제 조사권을 주는 방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또 이 대통령은 쿠팡 등 플랫폼에 가입하는 절차만큼 탈퇴하는 절차가 간단한지 질문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산불 진화와 관련해 초기진화의 책임이 산림청에 있는지 지자체에 있는지도 분명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고층·초고층 빌딩 화재 관계 체계에 대해 짚으면서 대피로 확보 등 소방법이 제대로 준수되고 있는지 점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화재는 예방이 중요하다"면서 가연성 외장재를 사용할 경우 국민 신고에 따른 포상금제를 마련해보는 것도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한편 이날 국무회의에서 내년 727조9000억원 규모 이재명 정부 첫 본예산도 처리됐다. 정부는 연구개발(R&D) 분야에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5000억원을 배정하는 등 지원을 크게 늘리는 한편 '인공지능(AI) 3개 강국'을 목표로 AI 분야에도 약 1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