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발맞춰 '임금체계 개편' 꺼낸 재계

고착화된 연공서열 체계 탈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따라
직무·성과 기반 체계 전환 주장

경영계가 '법적 정년연장'을 포함한 근로자 고용연장을 논의 과정에서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요구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이 65세 정년연장 입법을 연내 마무리하겠다면서도 임금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선 입장을 내지 않자 경영계가 같이 다뤄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인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라 직무와 성과를 토대로 임금체계를 바꿔 지속 가능한 고용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전날인 11일 "정년을 연장하는 것은 노동유연화와 함께 가야 한다"면서 "고용시장의 진·출입이 자유로워지거나 직무에 따라 임금을 조정할 수 있도록 우리 노동 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정년연장 논의 과정에서 '직무 성과급제' 개편에 대한 검토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경영계는 정년연장 논의를 계기로 반세기 이상 이어져 온 연공서열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공서열 임금체계는 1950년대 노동자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호봉제에서 시작한다. 사실상 종신고용인 임금체계로 인해 기업은 오랜 기간 숙련된 인력을 축적할 수 있었고, 이는 고도성장기의 마중물이 됐다.

하지만 이는 노동시장을 경직시켰다. 국회미래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속 30년 이상 정규직 평균 임금은 1년 미만 근속자의 2.95배에 달한다. 이는 일본(2.27배), 독일(1.8배)에 비해 상당한 차이가 난다.

특히 노동조합이 강력한 대기업, 공공부문, 금융권 등 일부만 호봉제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60% 이상 사업장에서는 임금체계 자체가 없다. 이중구조와 경직된 임금체계는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시대로 진입하면서 노동시장 개혁의 발목을 잡아 왔다.

'퇴직 후 재고용' 제도화 노력고용시장 유연화 출발점 기대

경영계는 정년연장 논의가 활발해지는 지금이 임금체계 개편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고령 근로자에 대한 '퇴직 후 재고용'을 제도화하고, 임금체계를 바꾸는 것이 고용시장 유연화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재고용 과정에서 일률적인 임금 삭감 대신 직무나 근로시간 등에 따른 임금 조정 가능성을 노사 모두에게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60세 이상 고령자가 단순 업무를 수행하는 직무를 맡거나 노동시간이 줄면 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령층 고용 확대로 발생하는 청년층 채용 축소나 기업 내 고비용 구조 유발과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총 관계자는 "이미 현대차 등 일부 대기업에서는 정년퇴직 후 촉탁직으로 재고용하면서 기존 임금의 70%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가칭 정년 후 재고용 특별법 제정으로 재고용의 법적 안정성을 높이고 정부 지원방안 등을 포함해 기업의 고령자 고용을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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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고용 유연성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양대노총 위원장을 만나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려면 사회 안전망 문제, 기업들의 부담 문제, 고용의 안정성과 유연성 문제 등을 터놓고 한 번쯤 논의해야 한다"며 고용 유연화에 대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노동계 내부에서도 정년연장을 요구하며 노사 자율로 업종별 직무급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와 같은 법적 정년을 가진 일본은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임금체계 개편의 해법을 찾았다. 일본은 2006년 법적 정년은 60세로 유지하면서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를 시행, '사회적 합리성이 있는 취업규칙 개정의 경우 노사합의 절차 없이도 변경 가능'하도록 노동계약법을 개정한 바 있다.

기업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면서도 근로자 임금이 줄어드는 문제는 사회적 부담으로 해소하는 방식을 택했다. '고연령고용계속급부' 제도를 통해서 퇴직(60세) 전 임금의 75% 미만으로 낮아졌을 경우 고용보험에서 매달 임금의 10~25%를 지원했다. 그 결과 작년 말 실시한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21인 이상 기업의 67.4%, 301인 이상 기업 79.4%가 고령자 재고용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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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연장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가 임금체계 개편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기업은 고령자 고용에 따른 비용을 상품 원가에 반영할 수밖에 없기에 원가를 맞추려면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도입해서 비용을 줄이거나 다시 하청을 주는 악순환이 발생할 것"이라며 "노조 입장에서 고용 유지가 더 큰 이익이라는 점에서 양보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IT부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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