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장 섰다'…주세 전면 폐지한 홍콩, 韓은 존재감도 없네 [르포][아시아酒허브]①

'제17회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
홍콩, 지난해 증류주 관세 인하로 무역허브 입지 강화
바이주·위스키·와인·사케 등 각국 주류 경쟁 치열
한국은 단 한 곳 참여…기술력·제도적 지원 한계 드러나

"농향형(?香型)은 꽃향과 과일향이 풍부하고 입안에서 부드럽고 단맛이 남는 게 특징입니다. 가장 대중적인 향 중 하나로 '우량예'와 '루저우 라오자오'가 여기 해당합니다."

홍콩무역발전국(HKTDC)이 지난 6일부터 사흘간 홍콩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제17회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Hong Kong International Wine & Spirits Fair)'는 입구부터 방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행사장 중앙에 널찍하게 마련된 중국주류협회의 '바이주 12 향형(白酒 12 香型·12 aroma types of Baijiu)' 특별부스에는 시향기에 코를 대고 연신 숨을 들이쉬는 애주가들로 붐볐다.

지난 6일부터 사흘간 홍콩에서 열린 '제17회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Hong Kong International Wine & Spirits Fair)'의 바이주 부스 전경.[사진=구은모 기자]

"주세를 낮추자, 시장이 열렸다"

올해 행사에는 21개국 620여개 업체가 참가하며, 맥주·와인·위스키·사케·보드카·중국 백주(바이주) 등 각국의 다양한 주류와 저도·무알코올 음료를 선보였다. 행사가 열린 사흘간 57개국 8200여명의 바이어가 참여했고, 1만1000명의 일반 방문객도 행사장을 찾아 각국의 다양한 주류를 시음하고 즐기는 모습이었다.

올해 박람회는 홍콩이 와인을 넘어 증류주(스피릿)에서 아시아 무역의 중심으로 거듭나려는 야심을 적극적으로 보여준 자리였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14개국의 다양한 제조사들이 참여한 월드 오브 스피리츠(World of Spirits)' 존을 신설해 와인보다는 스피릿에 무게를 싣는 모습이었다.

폴 챈(Paul Chan) 홍콩 재무장관이 지난 6일부터 사흘간 홍콩에서 열린 '제17회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Hong Kong International Wine & Spirits Fair)'의 개막식에서 홍콩 주류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구은모 기자]

아시아 자유무역의 상징인 홍콩은 2008년부터 와인과 맥주 등 발효주에 대한 주세를 전면 폐지하면서 아시아의 와인 무역 허브로 급부상했다. 2007년 16억홍콩달러(HKD) 수준이던 와인 수입량은 2016년 120억HKD로 10년 만에 7배 이상 성장했고,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도 전 세계의 주류 생산자들과 아시아 시장을 연결한다는 목표 등을 내걸고 2008년 처음 개최됐다.

홍콩의 주류산업은 지난해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경험했다. 바로 알코올 도수 30도(%) 이상의 증류주에 대해서도 주세를 인하한 것이다. 모든 증류주 수입원가에 100%가 일괄적으로 부과되던 주세를 200HKD 초과분에 대해선 10%만 부과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예를 들어 300HKD인 위스키의 경우 200HKD에는 100% 주세를 부과하고, 초과분인 100HKD에는 10%의 주세를 붙이는 방식이다. 고급 주류일수록 혜택이 커지는 방식이다.

세제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홍콩 상무경제발전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인하 조치 이후 올해 6월까지 증류주 수입량은 20% 이상 증가했고, 수입액은 90% 증가했다. 폴 챈(Paul Chan) 홍콩 재무장관은 "홍콩은 언제나 국제적인 성공사례를 이끌어냈다"며 "지난해 고급 주류에 대한 세금 부과 기준 변경으로 인해 홍콩의 주류 산업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홍콩과 중국 제품들도 세계시장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며 반드시 경험해볼 것을 권했다.

지난 6일부터 사흘간 홍콩에서 열린 '제17회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Hong Kong International Wine & Spirits Fair)'에 전시된 구이저우 마오타이(貴州茅臺)의 바이주.[사진=구은모 기자]

국경 넘어선 주류 실험실

이번 박람회에서는 중국의 바이주가 가장 시선을 끌었다. 올해 행사에는 중국의 10대 바이주 브랜드 가운데 '구이저우 마오타이', '우량예', '양하', '루저우 라오자오', '지앤난춘', '랑주' 등 6개 브랜드가 참가하는 등 세계시장 진출에 대한 바이주 업계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대 최대 규모로 마련된 바이주 전시단 구성은 현장에서 즉각적인 성과로도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쓰촨성(四川省) 루저우 라오자오의 량즈헝(Liang Zhiheng) 브랜드 매니저는 "남아공과 말레이시아, 인도, 일본 등지에서 온 구매자들과 협상해 중국 바이주 시장의 잠재력과 소비 트렌드에 대해 교류했다"며 "호텔과 슈퍼마켓 체인 등 여러 주문을 성사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6일부터 사흘간 홍콩에서 열린 '제17회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Hong Kong International Wine & Spirits Fair)'에서 방문객들이 시음을 하고 있다.[사진=구은모 기자]

비아시아권에서는 호주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번 행사에 호주는 이미 인지도가 높은 와인보다는 위스키 업체들이 대거 참여했다. 특히 호주 위스키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태즈메이니아 지역 생산자들이 공동 부스와 세미나를 진행하며 적극적으로 프로모션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호주 최남단 섬인 태즈메이니아는 청정 환경과 맑은 물, 양질의 곡물 재배 여건 등 주류 생산을 위한 자연 기반 조건이 호주 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주 정부가 주류 라이센스 및 허가 절차를 현대화하고 간소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크래프트 증류소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마틴 터마인(Martin Turmine) 올드 켐튼 증류소(Old Kempton Distillery) 대표는 "과거 금지됐던 위스키 증류가 1990년대 법적으로 허용되면서 혁신적인 생산자들이 태즈메이니아로 많이 몰려들었다"며 "무엇보다 남극에 가까워 매우 깨끗한 수원지가 많고, 양질의 보리 생산에도 적합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최상급 위스키 생산에 최적화된 지역"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난 6일부터 사흘간 홍콩에서 열린 '제17회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Hong Kong International Wine & Spirits Fair)'의 호주 부스 전경.[사진=구은모 기자]

일본 국세청 자국 주류업계 지원사격

일본도 40개 가까운 업체가 참여해 주류강국의 면모를 뽐냈다. 특히 일본은 국세청이 자국 주류업체들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참가 지원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일본 부스 측 관계자는 "일본 내 니혼슈 업체 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어 해외시장 개척이 전략적 돌파구라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며 "브랜드 인지도 제고는 물론 수입 바이어와 레스토랑 채널 확보 등의 성과를 위해 공동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에 일본은 사케를 중심으로 참가했는데, 사케를 단순한 주류가 아닌 일본 고유의 식문화와 양조기법, 지역 브랜드가 결합된 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집중했다. 실제로 참가업체들은 대부분 해당지역 고유의 쌀 품종과 효모를 사용해 차별화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토 다카시 아키타 메이죠 영업기획부 부장은 "아키타현의 코마치쌀과 청사과·리치 향이 특징인 고마치 스페셜 효모를 독점적으로 사용한다"며 "추운 겨울에도 느린 저온 발효가 가능해 이를 통해 아키타의 설국 유산을 구현하는 사케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부터 사흘간 홍콩에서 열린 '제17회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Hong Kong International Wine & Spirits Fair)'의 일본 사케 부스에서 시음이 진행되고 있다.[사진=구은모 기자]

잔치서 소외된 韓…존재감 없는 한국 주류

행사의 주인공 역할을 한 중국은 물론 일본도 잔치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자국의 주류 세일즈에 열을 올렸지만 한국 술은 존재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백 개 업체가 참여한 이번 행사에서 우리 업체는 단 한 곳, '오미나라'였다. 오미나라는 디아지오코리아 부사장 등을 거친 이종기 대표가 2008년 경북 문경에 설립한 양조장으로 지역특산품인 오미자를 활용한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 오미자 증류주 '고운달', 문경 사과로 만든 증류주 '문경바람' 등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오미로제는 2022년 한미 정상회담, 올해 한·베트남 정상회담 만찬주로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이웅호 오미나라 헤드 블렌더는 한국 업체들의 저조한 참여 배경에는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기술력을 꼽았다. 그는 "전통주라는 이름을 앞세운 우리 소규모 양조장들은 대부분 전문성보다는 열정이 앞서는 경우가 많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곳도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곳에 참여한 국가들의 상업 양조 역사는 최소 100년 이상은 거뜬히 넘은 곳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는 이와 비교해 턱없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이러한 시간 격차를 따라잡는 근본적인 방법은 기술력밖에 없고,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선 생산자들도 지금보다 더 많은 자본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고, 제도적인 뒷받침도 더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6일부터 사흘간 홍콩에서 열린 '제17회 홍콩 국제 와인&스피릿 박람회(Hong Kong International Wine & Spirits Fair)'에 유일하게 참가한 한국 업체 경북 문경의 '오미나라'[사진=구은모 기자]

유통경제부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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