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선기자
한국에서 멕시코까지 비행기로는 약 14시간이 걸린다. 거리가 먼 만큼, 남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인상은 대체로 단편적이다. 대중이 가장 쉽게 접하는 남아메리카 관련 콘텐츠는 영화다. 예를 들어 영화 '아포칼립토'에서는 신전에서 사람들이 제물로 바쳐진다. 제사장이 제물을 강제로 눕히고 날카로운 무기로 심장을 꺼내거나 목을 베는 장면은 남아메리카 문명에 대한 잔혹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렇게 남아메리카 문명은 '인신 공양'이라는 상징으로 굳어졌다.
책 '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는 이런 고정관념에 고개를 젓는다. 14~16세기 멕시코 중부에서 번성한 아즈텍 문명에 인신 공양이 없었다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즈텍 문명을 논리적이고 깊이 있게 설명한다. 아즈텍은 결코 미개한 문명이 아니었다. 인구 20만명이 거주한 초거대 수상도시는 당시 프랑스의 수도 파리보다 깨끗했으며, 그 배경에는 정교한 수로 시스템이 있었다. 또한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중앙 시장을 운영하며 활발한 경제 활동을 펼쳤다.
아즈텍 문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이야기'다. 그들은 우리가 다섯 번째 세계를 살고 있다고 믿었다. 첫 번째 세계는 '재규어의 시대'로, 사람들은 맹수에게 잡아먹혀 멸망했다. 두 번째 '바람의 시대'에는 콩을 먹고 살던 사람들이 강한 바람에 날아가지 않기 위해 나무에 매달렸다가 원숭이가 됐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각각 '비의 시대'와 '물의 시대'로, 이 역시 멸망했다. 하지만 다섯 번째, 새롭게 태어난 '태양의 시대'에서 인간은 다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즈텍 사람들은 언젠가 세상이 종말을 맞더라도 새로운 생명이 다시 태어날 것이라 믿었다. 이러한 믿음이 오늘날 멕시코의 축제 '죽은 자의 날(Dia de Muertos)'로 이어졌다. 멕시코인들은 축제를 통해 죽은 이들과 교감하고 그들을 기린다. 디즈니·픽사의 영화 '코코'도 바로 이 아즈텍 사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저자는 아즈텍 문명의 인신 공양 또한 서구적 시각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살아 있는 사람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잔혹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이 인간에게 베푼 자연의 풍요와 번영에 감사하기 위한 제의이자, 다른 종족에게 경외심을 심어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 수단이기도 했다. 저자는 "아즈텍인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무자비하고 냉혹한 전사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축제를 즐겼고 희생양을 기렸고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낸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아즈텍 문명에 대한 오해가 깊어진 데에는 기록의 빈약함도 한몫했다. 멕시코 원주민들이 사용한 나우아틀어로 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유럽인이 도착한 뒤 알파벳으로 쓰인 역사서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시선은 이미 유럽인의 것이었다. 후손들이 전한 기록들 또한 어렴풋한 기억과 전승된 풍습에 의존했다. 그 결과, 가장 자극적인 인신 공양 이미지가 문명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전해 내려온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도 충분히 흥미롭다. 우리와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비교하며 세계의 다양성을 느끼고 싶다면, 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를 펼쳐보길 권한다.
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카밀라 타운센드 지음|진정성 옮김|현대지성|248쪽|1만6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