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경와인셀라]'영원히 꺼지지 않는 거품'…반짝이는 황금빛 샴페인

<32> 프랑스 '빌까르-살몽(Champagne Billecart-Salmon)'

1818년 설립된 샴페인 하우스…7세대 걸친 200년 역사
'저온 발효' 양조 기법의 창시자…저온에서 피어나는 신선함
'르' 시리즈, 장기숙성·극저당·배럴양조 결합한 새시대 샴페인

편집자주하늘 아래 같은 와인은 없습니다. 매년 같은 땅에서 자란 포도를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양조하고 숙성하더라도 매번 다른 결과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와인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우연의 술'입니다. 단 한 번의 강렬한 기억만 남긴 채 말없이 사라지는 와인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아경와인셀라'는 저마다 다른 사정에 따라 빚어지고 익어가는 와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들려 드립니다.

'빌까르-살몽(Champagne Billecart-Salmon)'의 포도밭 전경.[사진출처=빌까르 살몽]

"결혼과 포도나무가 영원히 지속되기를(Que le mariage et la vigne durent toujours)"

프랑스 샹파뉴 에페르네(Epernay)의 마뢰이-쉬르-아이(Mareuil-Sur-Ay) 마을에는 한 부부가 밤마다 포도밭을 함께 돌며 이같은 기도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부부의 바람대로 둘은 평생을 함께했고, 그들의 포도밭도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함없이 수확이 이어지고 있다.

1818년 빌까르 살몽을 설립한 니콜라 프랑수아 빌까르(Nicolas Francois Billecart)와 엘리자베스 살몽(Elizabeth Salmon) 부부.[사진출처=빌까르 살몽]

이야기의 주인공은 니콜라 프랑수아 빌까르(Nicolas Francois Billecart)와 엘리자베스 살몽(Elizabeth Salmon) 부부로, 남편인 니콜라는 뛰어난 사업 감각을 바탕으로 마을의 여러 포도밭을 사들이며 20대 시절 이미 지역에서 야심가로 통하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여성이 엘리자베스였다. 그녀는 당시 포도 재배로 명성이 높던 살몽 가문의 장녀로, 포도밭을 확장하려던 니콜라에게 살몽 가문의 포도밭과 양조 노하우는 더할 나위 없는 자산이었다.

순수한 연애 감정인 동시에 철저한 비즈니스 파트너십으로 알려진 이 결혼의 결과물로 1818년 샴페인 하우스가 탄생하는 데 바로 '빌까르-살몽(Champagne Billecart-Salmon)'이다. 두 사람은 양쪽의 이름을 모두 브랜드에 넣었는데, 이는 당시 남편의 성만 쓰는 관습이 강했던 프랑스 귀족 사회에는 상당한 파격이었다고 전해진다. 덕분에 하우스의 로고에는 지금도 'B'와 'S'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B(Billecart)'와 'S(Salmon)'가 겹쳐진 형태의 빌까르 살몽의 하우스 로고.[사진출처=빌까르 살몽]

결혼 후 두 사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집 지하를 대형 와인 저장고로 개조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상업 샴페인 양조가 발흥하던 시기였는데, 와인 생산에 진심이었던 젊은 부부는 살림집과 와이너리가 구분되지 않는 한 공간에서 신혼을 보냈다. 부부의 열정은 이후 7세대에 걸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빌까르 살몽은 유명 샴페인 하우스로는 드물게 외부 자본에 매각하지 않고 가족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들의 포도나무가 영원하길 바라던 부부의 기도 덕분일 수도 있겠다.

현대적 해석으로 빚은 200년 전통의 맛

"우리에게는 와인 양조가 핵심 요소이고, 나머지는 허튼짓이다." <6세대 소유주, 앙투안 롤랑 빌까르(Antoine Roland Billecart)>

'빌까르-살몽(Champagne Billecart-Salmon)'의 스테인리스 발효 탱크.[사진출처=빌까르 살몽]

샹파뉴의 꼬뜨 데 블랑(Cote des Blancs)에서 랭스(Reims)까지 170헥타르(ha)의 재배면적에서 최고급 포도를 재배하고 있는 빌까르 살몽은 샴페인 양조법에서도 혁신적인 생산자로 유명하다. 특히 '저온 발효(Cold Fermentation)'는 빌까르 살몽의 상징 같은 양조 기법으로 여겨지는데, 이를 통해 섬세함과 우아함을 끌어올리고 동시에 신선함을 장기적으로 유지한다. 저온 발효한 포도즙은 산도가 좋아 장기 숙성이 가능하다.

빌까르 살몽이 1952년 개발한 저온 발효 기법은 발효통의 온도를 5도(℃)까지 낮추고, 이틀 후 효모를 첨가한 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13℃ 온도로 3~4주가량의 느린 발효 과정을 거친다. 이후 포도 품종과 포도밭 구획에 따라 분리돼 양조한 후 셀러 마스터의 신중한 테이스팅을 거쳐 블렌딩 해 섬세한 맛과 향을 극대화한 후 병에 넣는다. 병입된 샴페인은 17세기부터 사용된 오래된 지하 저장고에서 보관 및 숙성된다. 빌까르 살몽은 현재 이러한 과정을 시행하는 최초이자 유일한 샴페인 하우스로 알려져 있다.

'빌까르-살몽(Champagne Billecart-Salmon)'의 지하 셀러 전경.[사진출처=빌까르 살몽]

아울러 블렌드의 진가를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 장기 숙성을 진행한다. 샴페인의 법정 숙성기간은 논 빈티지 샴페인이 15개월, 빈티지 샴페인이 3년이다. 하지만 빌까르 살몽은 논 빈티지 샴페인을 3~5년 숙성하고, 빈티지 샴페인은 최소 10년 이상, 길게는 18년까지 숙성한다. 샴페인은 병 숙성을 길게 가져가면 효모 앙금과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풍미가 극대화된다.

또한 당분 함량을 줄여 최종 샴페인의 풍미를 더욱 섬세하고 순수하게 표현하기 위해 '도사주(Dosage)'를 줄이고 있다. 샴페인은 생산 과정에서 2차 발효 후 생성된 효모 침전물을 배출하는 '데고르주망(Degorgement)'이란 작업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침전물과 함께 소량의 와인도 함께 유출되기 때문에 그 부족분을 보충하는 도사주를 진행하는데, 이때 보충되는 '리퀴르 덱스페디시옹(Liqueur d' expedition)'이 와인의 최종 당도를 결정한다.

'빌까르-살몽(Champagne Billecart-Salmon)'의 지하 셀러에 저장된 리저브 와인.[사진출처=빌까르 살몽]

빌까르 살몽은 이러한 양조 기법들을 적용한 논 빈티지 와인들을 '르(LE)'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재단장했다. 르 시리즈는 하우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은 반영해 순수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강조하기 위해 재정비된 라인업으로, 르 시리즈의 대표로 꼽을 수 있는 와인이 '샴페인 빌까르 살몽 르 블랑 드 블랑(Champagne Billecart Salmon Le Blanc de Blancs)'이다.

르 블랑 드 블랑은 그랑 크뤼 밭에서 재배한 최상급의 샤르도네(Chardonnay) 2년 치를 선별해 최상의 블렌딩 비율로 양조한 샴페인이다. 복합미와 신선한 마무리 등으로 와인 애호가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샴페인으로 당도가 매우 낮은 엑스트라 브뤼 스타일로 생산된다. 와인은 반짝이는 금빛의 색상을 바탕으로 우아하게 드러나는 옅은 연둣빛의 조밀한 버블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분필류의 뉘앙스, 짙은 미네랄리티와 함께 브리오슈, 버터 그리고 레몬 등의 시트러스한 과일 아로마를 느낄 수 있다. 초키한 뉘앙스와 미네랄리티가 탁월하게 조화를 이루는 샴페인으로 캐비어나 고급 숙성 회 등과 잘 어울린다.

'샴페인 빌까르 살몽 르 블랑 드 블랑(Champagne Billecart Salmon Le Blanc de Blancs)'

빌까르 살몽은 스테인리스 탱크 외에 오크 배럴 양조도 활용한다. 배럴에서 양조하면 나무에서 비롯된 오크의 다양한 특징이 와인에 반영되는데,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다. 빌까르 살몽의 경우 나무의 특성 외에도 산화 풍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배럴 양조를 사용한다. 산화 풍미에 집중하기 위해 평균 15년 이상 사용한 배럴을 사용하며, 이러한 중립적인 배럴에서 양조를 활용하면 스테인리스에서 양조한 와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미묘한 풍미한 블렌드에 더해지게 된다.

'샴페인 빌까르 살몽 르 수 부아(Champagne Billecart Salmon Le Sous Bois)'은 100% 오크 배럴에서 양조한 원액으로만 만든 샴페인이다. 이 독특한 샴페인은 샴페인을 만드는 전통적인 세 가지 대표 품종(샤르도네 43%, 피노 뫼니에 29%, 피노 누아 28%)을 블렌딩해 양조했는데, 전통적인 샴페인의 양조 철학과 노하우를 한 병에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전체 와인을 오크통에서 저온 발효가 진행하며, 2006년까지의 리저브 와인을 사용한다.

와인은 지속적이고 미세한 버블을 둘러싼 반짝이는 황금빛의 생기가 느껴지는 샴페인이다. 말린 과일, 신선한 감귤류 및 핵과류의 아로마가 조화롭게 펼쳐지며, 고소한 버터의 아로마가 뒤이어 옅게 나타난다. 구운 빵과 토피넛 등의 고소한 향이 입안에서 퍼져나가며, 힘과 성숙미를 동시에 보여주는 훌륭한 샴페인이다.

'빌까르-살몽(Champagne Billecart-Salmon)'의 대형 오크통 푸드르.[사진출처=빌까르 살몽]

'샴페인 빌까르 살몽 르 수 부아(Champagne Billecart Salmon Le Sous Bois)'

색보다 맛으로 증명한 로제의 아이콘

빌까르 살몽은 절묘하고 섬세한 로제 샴페인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살몽이라는 이름이 영어로 '연어(Salmon)'와 철자가 같은 탓에 실제로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로제 샴페인의 유명세를 높이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4대손인 샤를 롤랑 빌까르(Charles Roland Billecart·1886~1963)는 로제 샴페인의 생산을 밀고 나간 최초의 양조업자 중 하나였다. 빌카르 살몽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로제 샴페인이 아닌 '샴페인 로제(Champagne Rose)'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로제라는 스타일보다는 샴페인에 방점이 찍히길 바라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눈을 가리고 마시면 색과 맛을 구분할 수 없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빌까르-살몽(Champagne Billecart-Salmon)'의 오크 배럴.[사진출처=빌까르 살몽]

로제 와인은 일반적으로 적포도의 즙과 껍질을 접촉해서 껍질로부터 색과 폴리페놀을 얻는 침용(Maceration)을 통해 만들어진다. 침용을 오래 할수록 색과 추출물이 더 많이 우러나고 색이 진한 와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샤를은 이러한 방식이 상쾌하고 짭짤한 프로방스풍 로제 와인에는 적합하지만 와인에 타닌감을 더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빌카르 살몽의 샴페인에 타닌감이 더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화이트 와인에 레드 와인을 섞어 넣는 방식을 사용했다. 로제 와인은 이미 만들어진 레드와 화이트 와인을 섞는 방식으로 만들지 않지만 로제 샴페인만은 예외로 인정하고 있고, 이러한 양조 방식이 가장 먼저 사용한 곳 중 하나가 바로 빌까르 살몽이다.

빌까르 살몽의 대표 로제로는 '샴페인 빌까르 살몽 르 로제(Champagne Billecart Salmon Le Rose)'을 꼽을 수 있다. 은은하고 미식가적인 향을 가진 빌까르 살몽 로제는 로제 샴페인의 기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반짝이는 색상과 놀라운 기교, 강렬한 뉘앙스가 전달하는 로제 샴페인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샴페인 빌까르 살몽 르 로제는 샤르도네 45%, 피노 누아 35%, 피노 뫼니에 20%의 블렌딩돼 만들어지는데, 강렬하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연분홍색과 우아한 거품이 화려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은은하고 잘 정제된 붉은 베리류의 아로마가 식욕을 돋우며, 이어지는 흰 꽃의 향기와 시트러스함이 다채로운 아로마를 선보인다. 입에서는 조밀한 버블로 인한 크리미한 텍스쳐와 함께 은은하게 퍼지는 야생 딸기, 라즈베리 뉘앙스가 고급스러움을 더하며, 다양한 맛의 요소가 완벽한 조화를 보여준다.

'샴페인 빌까르 살몽 르 로제(Champagne Billecart Salmon Le Rose)'

유통경제부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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