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강나훔기자
연합뉴스
한미 관세 협상이 교착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우리 정부가 통상 수장을 다시 미국에 급파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4일 새벽 귀국하자마자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사실상 '바통터치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
15일 산업부에 따르면 한미 관세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여 본부장이 이날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앞서 김 장관은 지난 11~12일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만나 협상을 벌였지만 핵심 쟁점을 풀지 못한 채 돌아왔다. 산업계 안팎에서는 '빈손 귀국'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 측이 한국에 요구하는 3500억달러(약 480조원) 규모 대미 투자 실행 방안과 관련해, 투자 구조와 이익 배분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미국은 한국이 현금을 직접 투입하거나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투자금을 조달하길 원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보증이나 대출 등 간접적 방식으로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투자 수익 배분을 놓고도 미국은 일본식 모델, 즉 초기 투자 회수 전후로 수익을 차등 배분하는 방식을 요구하는 반면, 우리 정부는 "비합리적"이라며 거부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이번 투입을 두고 협상이 단기간에 매듭짓기 어려운 '장기전'으로 접어들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여 본부장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대응 등 통상 현안을 총괄해온 실무 전문가다. 정부는 정무적 메시지와 상징성을 담당했던 장관의 역할과 달리, 이번에는 협상 세부안을 다루는 '실무 2라운드' 성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관세 협상 외에도 현안은 산적해 있다. 특히 최근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에 구금된 뒤 풀려난 사건도 논의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숙련 인력 비자 발급 제한이 장기간 이어진 것이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정부는 통상·정무 라인을 총동원해 미국 측과의 협상에서 돌파구를 모색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워싱턴 정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이 얼마나 유연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업계에서도 "관세 협상이 단순히 세율 문제에 그치지 않고 대미 투자와 공급망, 비자 문제 등 다양한 의제와 얽혀 있다"며 "이번 협상이 장기화될 경우 기업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과의 협의가 진행 중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