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기자
멕시코 정부가 중국·한국 등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를 대상으로 고율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국내 일자리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중국 압박 기조에 발맞춘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AF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멕시코 경제부는 자동차를 비롯해 섬유, 철강, 장난감 등 약 1500개 품목에 대한 수입 관세를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수입관세 전면 개편의 일환으로, 이에 따라 약 520억달러 규모의 수입품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경제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미 관세가 부과되고 있지만 세계무역기구(WTO)가 허용하는 한도까지 (관세를) 끌어올릴 것"이라며 "특정 수준의 보호 없이는 경쟁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중국산 자동차가 참조가격(reference price) 이하로 유입돼 멕시코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산 자동차에 최대 5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이번 계획은 의회 승인을 거쳐야 하지만 여당이 과반을 점하고 있어 통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관세 인상안이 의회 문턱을 넘으면 철강·장난감·오토바이에 35%, 섬유에 10~50%의 관세가 부과된다. 자동차 부품, 의류, 신발, 가전제품, 종이·판지, 유리, 화장품 등에도 최고 50%의 관세가 적용된다. 멕시코 정부는 이번 조치로 약 32만5000개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번 관세 인상의 직격탄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멕시코 경제부 자료에 따르면 멕시코와 FTA를 체결한 국가는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EU), 일본, 칠레, 파나마, 우루과이 등이다. 멕시코 경제부가 문서에 "관세 인상은 FTA를 맺지 않은 국가들 특히 중국, 한국,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태국, 튀르키예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멕시코 정부는 관세 부과 배경으로 산업 경쟁력 강화와 기업·고용 보호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순한 산업 보호를 넘어 미국을 의식한 결정이라고 보고 있다. 에브라르드 장관 역시 올해 초만 해도 관세 인상에 부정적이었다.
미국은 그간 중국이 멕시코를 '우회 통로'로 활용해 수출길을 넓히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여기에 북·중·러가 밀착하는 모습을 과시한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비자 발급 제한 등 대중 압박 수위를 높이자 멕시코가 이에 보조를 맞추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마리아나 캄페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미국은 중국이 멕시코를 '뒷문(back door)'으로 활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멕시코의 대중 무역적자는 지난 10년 새 두 배로 불어나 지난해 1200억달러에 달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라 실러 멕시코 방코 베이스 애널리스트는 "이번 관세는 세수 확대와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는 목적이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멕시코는 캐나다와 함께 미·멕·캐 협정(USMCA)을 체결한 최대 교역 파트너다. 이 협정이 사실상 보호막 역할을 하면서 멕시코는 상호관세 부과에서 상당 부분 예외를 적용받았다. 다만 USMCA는 내년 재검토를 앞두고 있다.
중국과의 교역에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점도 멕시코 정부의 관세 인상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멕시코의 대중 무역적자는 1131억달러를 넘어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