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하기자
홍콩 법원이 동성 커플이 체외수정(IVF)으로 낳은 자녀의 경우, 출산한 사람뿐만 아니라 유전적으로 연결된 파트너에게도 부모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동성 가족의 권리를 인정한 중요한 판례로 평가된다.
6월 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청에서 LGBTQ+ 프라이드 결혼 기념행사가 열려 커플들이 혼인 등록을 하고 있다(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무관). A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법원은 전날 1심 재판에서 체외수정을 통해 아들을 낳은 여성 동성부부 부부에게 출산 여성만 법적 부모로 인정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출생신고 당국이 동성 부부 모두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은 행위가 자녀의 사생활과 가족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중국인 여성 R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여성 B는 2019년 해외에서 결혼한 뒤, R의 난자를 채취해 B가 출산하는 방식으로 아들을 낳았다. 이들은 홍콩 당국이 출생신고를 받으면서 출산한 B에게만 법적 부모 지위를 부여하고, 유전적 친모인 R에게는 아무런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부부는 2022년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홍콩 법원은 R이 관습법상 부모에 해당한다고 밝혔지만, 입법위원회의 역할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로 R이 부모로서 어떤 구체적인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지까지 명시하지는 않았다. 이에 부부는 2023년 법무부에 아들의 부모로 B뿐만 아니라 R까지 포함해 재등록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결국 사법심사를 청구하게 되었다.
이번 판결을 내린 러셀 콜맨 판사는 "자녀의 출생증명서가 실제 가족 관계를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아 아들이 신념 체계와 자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R을 법정 후견인으로 지정하라는 정부의 제안은 충분한 대안이 아니다"라며, "'부모는 그냥 부모인 것'(a parent is a parent)"이라고 강조했다.
판사는 동성 커플 관계가 파탄 났을 때를 대비한 법적 장치가 없다는 정부의 우려에 대해, 필요시 법원이 자녀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부모의 권리와 의무를 제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홍콩에서는 세금이나 상속 등 제한된 목적에 한해서만 동성 커플의 권리가 인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