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쉴 수 있게'…상병수당 재정 소요액 최대 3조6000억

시범사업 효과 분석해 2027년 본제도 도입 목표
외래진료·대기기간 따라 필요 재원 큰 차이
재원조달 방식도 조세 vs 사회보험 엇갈려

정부가 내후년 시행을 목표로 하는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하려면 최대 3조6000억원의 재정이 필요하다는 추산이 나왔다. 상병수당의 적용 대상과 운영 구조, 재원 조달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와 사회적 합의가 서둘러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9일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과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상병수당 제도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 토론회에서 강희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건강보장정책연구실장은 상병수당 재정 소요액을 최소 1319억원, 최대 3조5999억원으로 전망했다.

상병수당은 노동자가 업무와 무관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일을 하지 못할 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개국 가운데 상병수당 제도가 없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뿐이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당시 '아파도 쉬지 못하는 사회'라는 비판과 함께 상병수당 도입 논의가 이뤄지면서 2022년 7월부터 일부 시·군·구에서 다양한 형태의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전국 14개 지역에서 총 1만2991명이 1인당 평균 30일간, 약 141만원씩을 지급받았다.

강 실장은 외래진료 포함 여부, 무급 대기기간 일수 등에 따라 4개 모형으로 상병수당의 재정 소요액을 추정했다. 이에 따라 '대기 14일, 입원만 보장, 30일 지급'을 적용하면 연간 1319억원이, '대기 3일, 입원·외래 보장, 180일 지급'의 경우 3조5999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앞서 지난해 12월 김평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지속가능한 사회복지재정을 위한 상병수당 설계' 보고서에선 소득 기준을 적용하지 않은 경우 2050년 필요한 재정이 최소 1조7566억원(대기 3일, 180일 보장)에서 최대 9조3405억원(대기 14일, 30일 보장), 소득 기준을 적용할 경우 1조282억~5조3619억원으로 추산됐다.

이처럼 막대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정부는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조세 방식과 건강보험·고용보험 등의 사회보험 방식을 놓고 고심 중이다. 국가 재정사업으로 시행하는 조세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할 경우 당장 상병수당이 절실한 취업자를 선별해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으나 재정 부담이 높아지고 기존 사회보장제도(기초생활보장·긴급복지 등)와 겹치는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반면 사회보험으로 설계하면 넓은 범위의 취업자를 보호하기는 유리하지만 상병수당을 위한 보험료 신설 등 국민 부담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

강 실장은 "일단 1000억~5000억원의 비교적 적은 재정으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제도를 확대해 나갈 수 있다"며 "대기기간 7일(자영업자는 3일), 수당 지급기간은 3개월로 하되 월 소득 179만원 이하는 긴급복지 지원제도를 활용하고 그 이상에겐 상병수당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반면 토론회에 함께 한 김흥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노동력 상실로 인한 빈곤을 최소화한다는 취지에서 대기기간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상병수당 최저선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지급기간을 1년6개월로 하고 플랫폼 노동자 등 특수형태근로 종사자나 자영업자도 폭넓게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 효과를 분석해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본제도 도입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강민구 복지부 상병수당제도팀장은 "상병수당은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재정 소요 편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설계해야 할 것"이라며 "큰 틀을 올해 말에서 내년 초 사이에는 정해야 순조롭게 2027년에 본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중기벤처부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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