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트럼프 관세 압박에도…올해 경상흑자 '사상 최대' 전망되는 이유

AI투자發 반도체 사이클 주효, "내년까지 호황"
국제유가 하락 따른 수입 감소…경상흑자 규모 키워
본원소득수지 구조적 성장도 한몫
"기관·개인 모두 해외서 이자·배당 수익"

'1100억달러(약 152조8000억원)'. 한국은행이 전망하는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다. 예상대로 성적표를 받아든다면 이는 2015년 기록한 1051억2000만달러 흑자를 뛰어넘는 사상 최대치다. 해외 주요 투자은행(IB) 역시 최근까지의 한국 경상수지 성적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다'는 평가를 하면서 연말까지 호조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관세 불확실성이 짙게 드리우면서 올해 내내 우리나라 경제의 큰 축인 수출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던 상황에서, 어떻게 이 같은 전망이 가능한 걸까.

강력한 반도체 사이클 "내년까지 호황 지속"

8일 한은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올해 1~7월 경상수지 흑자 규모(잠정치)는 601억5000만달러다. 지난해 같은 기간 492억1000만달러를 109억4000만달러(22.2%) 웃도는 수치다. 경상수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수지(상품 거래 수출·수입 차)의 호조세가 두드러졌다. 지난달 한은이 올해 경상수지 전망을 1100억달러 흑자로 올려 잡은 데도, 상품수지 흑자 폭 확대(전년 대비 307억달러 증가) 관측이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발 관세 우려에도 올해 우리나라 수출을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건 반도체다. 인공지능(AI) 인프라 수요 확대를 등에 업은 반도체 업황 호조세가 한국 수출의 큰 축인 반도체 수출을 이끌고 있다. 1~7월 통관기준 반도체 수출 규모는 890억1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AI 투자 수요와 미국 관세 부과 및 더블데이터레이트(DDR)4 단종 전 선수요에 힘입어 7월에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6% 증가한 149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한은은 이번 반도체 수출 확장기가 2000년대 초 IT 혁명·대중화 당시와 같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챗GPT 이후 본격화한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AI 서버 투자가 꾸준히 확대하는 가운데, AI 저변은 빅테크에서 일반기업으로, 기업에서 국가로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송재창 한은 경제통계1국 금융통계부장은 "당분간 경상수지에서 핵심은 AI 인프라 수요 지속세로, 이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짚었다.

해외 IB도 우리나라의 탄탄한 반도체 수출을 경상흑자 주요인으로 꼽았다. 노무라증권은 "견조한 글로벌 AI 수요와 기업의 수출국 다변화 노력 등에 힘입어 한국 수출이 당분간 양호한 회복 탄력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주요 IB는 올해 우리나라 경상수지 전망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5.1%까지 상향 조정한 상태다.

국제유가 하락 따른 수입 감소…경상흑자 규모 키운다

에너지 가격 하락에 따른 수입 감소도 경상 흑자 규모 확대에 기여한다. 한은은 지난달 경제전망에서 지난해 배럴당 80달러였던 국제유가(브렌트유)를 올해 68달러, 내년 63달러로 잡았다. ING는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어 한국의 상품수지 흑자가 확대될 것"이라며 "단 석유제품·석유화학 수출도 동반 둔화하면서 확대 폭을 제한할 것이란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다만 미국 관세 영향은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로 미국 관세 영향은 하반기 점차 강화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7월 경상수지에서도 자동차, 자동차부품, 철강 등 관세 부과 품목을 중심으로 대미 수출에 악영향이 나타나는 모습이 관찰됐다. 대미 자동차 수출은 향후 관세 인상 영향이 판매 가격에 전가되면서 수요 위축이 발생하며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미 철강 수출 역시 가뜩이나 글로벌 건설·제조업 업황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에 따른 악영향이 있었는데, 관세 대상 품목까지 확대하면서 영향이 보다 뚜렷해질 것이라고 관측됐다.

구조적으로 규모 확대하는 본원소득수지 "기관도 개미도 해외서 이자·배당"

구조적으로 규모를 키우고 있는 본원소득수지도 경상흑자 폭 확대에 힘을 보탰다.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가 증가한 점, 기관 및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채권 투자를 확대한 점 등에 따라 해외에서 들어오는 이자와 배당이 늘며 본원소득수지 규모가 커지고 있다. 본원소득수지는 거주자와 비거주자 간 발생하는 급료 및 임금, 투자소득의 차이를 나타낸다.

본원소득수지는 2020년대 들어 큰 폭의 상승세를 시현하고 있다. 2020년 134억9000만달러에서 2021년 194억4000만달러, 2022년 203억5000만달러, 2023년 262억5000만달러, 지난해 266억2000만달러로 꾸준히 성장 중이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이미 175억4000만달러까지 올라온 상태다. 수년간 기업이 해외법인 등을 통해 꾸준히 해외 직접투자가 규모를 키운 데다, 코로나19 이후 기관과 개미의 증권투자 증가율 역시 급증한 결과다. 올해 2분기 우리나라 대외금융자산은 해외 직접투자와 증권투자가 확대하고 미국 증시도 호조세를 보이면서 사상 최대 폭(1651억달러) 증가했다.

경상수지에서 본원소득수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품 수출입 실적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2020년 17.8%에서 지난해 26.9%까지 올라왔다. 지난해는 상품수지 호조에 따라 경상수지가 990억4000만달러로 역대 2위를 기록했음에도 본원소득수지 비중이 30%에 가까워졌다. 시장은 국민연금과 기관, 개인 등 투자 주체별로 차이는 있겠으나 당분간 내국인 해외투자가 대규모로 이어질 수 있는 여건이라고 보고 있다.

경제금융부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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