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순기자
롯데백화점이 그룹에서 추진하는 직무급제를 유통군 중 처음으로 도입한다. 직원의 직무 전문성 강화와 성과 중심 인사체계를 정착해야 한다는 신동빈 롯데 회장의 주문에 따라 성과와 전문성이 뛰어난 직무에 대해 보상 측면에서 우대하는 제도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직원 과반수가 동의하면 올해 안에 시행될 예정인데, 노동조합 측은 구성원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이 자유로운 의사 개진이 어렵게 설계됐다며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새 인적자원(HR) 제도인 '전문성 성장 중심 HR제도'와 기타 제도 변경을 시행하기 위해 지난 12일부터 이날까지 임직원을 대상으로 동의 절차를 받고 있다. 올해 6월 말 기준 직원 3047명 중 과반수가 새 제도를 도입하는 데 동의하면 올해 안에 이를 시행할 계획이다.
롯데백화점 본점. 롯데백화점 제공
롯데백화점이 추진하는 전문성 성장중심 HR제도는 직급별 연차와 상관없이 전문성에 따라 승진과 평가가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직무별 특성에 따른 맞춤형 교육 등 체계를 마련해, 동기부여를 강화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세부적으로 연차와 승진 연한 등을 적용했던 기존 등급(Grade) 체계를 폐지하고, 업무 전문성에 따른 'GL(Growth Level)'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다. GL은 코칭을 기반으로 업무 수행이 가능한 사원급을 뜻하는 GL1부터 업계 최고 수준의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전문가를 나타내는 GL5까지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여기에 직무 난이도와 중요도에 따른 4단계의 JL(Job Level)도 도입한다. 매년 직원 개인에 대한 평가 결과와 새로 도입하는 GL, JL 등급 등을 종합해서 임금인상률과 상한액을 차등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같은 인사 고과를 받은 직원이라도 높은 등급에 속하는 직무와 전문성에 따라 보수가 달라진다.
롯데는 연차에 따른 연봉제 시스템 등 기존 인사·임금 체계를 개편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직무 기반 HR 인사제도를 그룹사에 순차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홍기획, 롯데이노베이트가 이 기준에 따른 직무급제를 도입했고, 롯데케미칼 첨단소재사업부도 직무급제를 시행 중이다. 식품군 중에서는 롯데웰푸드가 지난달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직원 동의 절차를 밟아 전체 구성원 2073명 중 과반수(56.6%)가 이에 동의했다.
그룹 내 상징성이 큰 롯데백화점에서 이번 동의절차가 통과돼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면 유통군 전반으로 직무급제가 빠르게 확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조 롯데백화점지회(롯데백화점 노조)는 회사가 전문성 성장중심 HR제도를 추진하면서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비민주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내 시스템을 통해 인사제도 변경안을 안내하고, 직원별로 동의 여부를 선택하도록 했는데, 기명투표 방식이 소신대로 투표하지 못하도록 사실상 선택지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동의 절차를 위해서는 개인 사번과 이름을 입력하고 '동의'와 '동의하지 않음' 중 선택해야 하는데, 이러면 회사에서 누가 동의하고 반대했는지를 알 수밖에 없는 실질적인 공개 투표"라며 "새로운 제도를 통해 기대하는 효과나 세부 내용상의 문제점 등은 차치하더라도, 직원 입장에서는 불이익을 우려해 회사의 정책을 무조건 수용할 수밖에 없는 독단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스템을 새로 만들어 비밀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다"며 "비밀·무기명 투표로 제대로 된 직원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새로운 인사제도 관련해 설명회 개최는 물론 자율 의사에 따라 동의 또는 비동의를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했다"며 "동의절차의 기명 방식도 적법한 취업규칙 변경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 취업규칙 신고 절차를 위해 직원 개인정보를 확인하는 것일 뿐 투표 내용이나 신원은 노출되지 않고 불이익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구성원들은 반대를 선택해도 문제가 없는 건지 노조에 우려를 표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롯데백화점 노조는 이날 마무리되는 동의 절차 결과와 상관없이 노동부에 절차상 하자를 주장하는 민원을 제기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