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예견된 사고였지만…'보증금 못 받았어요' 시한폭탄 된 사회주택 [Why&Next]

3년전 보증금 미반환 피해 발생 예상하고도
보증금 미반환 사고 터지자 우선변제 발표
서울시 매입확약 지시에도 배임죄부터 따진 SH
HUG 보증보험 가입 요건 완화 등은 미해결

지난 26일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공사)가 보증금을 선지급하는 것으로 일단락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의 보증금 미반환 사태는 예견된 사고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시가 3년 전 수립한 재구조화 방안에는 "보증금 보호에 취약해 대비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시나 SH공사 모두 움직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예견된 사태를 수습하는 데 1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시는 연초 협의체를 꾸리더니 지난달 SH공사에 매입 확약을 지시했다. SH공사는 법률 검토에 급급해 한 달을 더 소요했다. 예견된 사태를 사전에 준비했더라면 청년과 신혼부부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미봉책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시와 SH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조정하지 않아 제2의 미반환 사태는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보증보험 사각지대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28일 최기찬 서울시의원에 따르면 2021년부터 운영해온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중 콘체르토 장위, 아츠스테이 성산에서 전세금 미반환 피해 7건이 발생했다. 이 중 장위동 1가구는 지난해 8월 경매 개시가 결정됐다. 시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7가구에 오는 10월부터 우선 변제한 후 구상권을 행사해 손실을 회수하겠다고 했다. 피해 사업장은 즉시 계약을 해지하고 SH공사가 직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사회주택은 청년이나 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하는 목적으로 마련됐다. SH공사가 사회적기업·협동조합에 토지를 저리에 임대하고 건설비용 융자 등을 지원하면 시세의 80% 이하 보증금을 받고 임대하는 주택이다. 다만 소유자(SH공사)와 건물 소유자(민간 운영사업자)가 달라 보증보험에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태생적인 한계였다. 8월 현재 14개 사업지 중 13개는 보증보험이 가입돼 있지 않다. 특히 민간 사업자들은 대부분 재정 건전성이 취약한 업체들이었고, 임대료가 낮아 수익성도 확보하기 힘들었다.

3년 전 예견하고도… 조치 미흡

시는 3년 전부터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견했다. 당시 사회주택 신규 공급을 중단하면서 내놨던 '사회주택 재구조화 방안'에는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방안에는 임대보증금 보증보험 가입이 저조하고, 사업자 재정건전성이 취약해 자본금 확보가 어려워 사업이 지연되는 점 등을 문제점으로 제시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SH공사 직접 운영 전환이나 민간 매각 등 추진, 문제 사업자 퇴출, 운영실태 관리·감독 강화 등을 대안으로 내놨다.

최 시의원은 "2022년에도 보증보험 미가입 문제를 지적했고, 재구조화 방안에서도 보증금 보호에 취약해 대비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며 "대책 마련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대응이 미흡했고, 건물 매입 확약 과정에서 SH공사의 추가 예산 투입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콘체르토 장위 전경. 두꺼비하우징 홈페이지 캡처

배임죄 책임 회피 급급했던 SH

특히 SH공사는 시의 지침에도 업무상 배임죄를 물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SH공사의 우려는 사회주택의 사업요건과 보증보험의 가입요건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 SH공사와 계약한 민간 사업자 계약에는 '사업자 사유로 계약 해지 땐 감정평가 금액의 40~70%로 매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보증보험을 관할하는 HUG는 토지 소유주인 SH공사가 감정평가액 100%에 사업자의 건물을 매입한다는 확약을 요구했다. SH공사와 사업자 간 계약보다 비싼 가격에 건물을 매입해야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SH공사 입장에서는 특혜 시비에 걸릴 수도 있고 법적인 문제가 걱정될 수 있는 상황이다.

SH공사는 지난 5월 행정안전부에 매입확약이 지방공기업법상 '채무보증 계약 제한'에 해당하는지를 물었고, 위반 사항이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두 달 후, 시가 미반환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주택 입주민보호대책'을 마련해 지시하자 SH공사는 다시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 당시 시는 대책 마련을 지시하면서 '감평금액의 40~70%로 매입하는 조건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단서도 제시했다. SH공사는 이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하는지를 3곳의 법무법인에 물었는데 답이 엇갈렸다. 결정을 못 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 지탄, 감사 지적 등 부담이 커지자 SH공사는 '서울시 감사위원회'에 사전컨설팅까지 의뢰했다. 사회주택을 시작하면서 충분히 검토했어야 할 검토가 지난 한 달여간 이뤄진 것이다. SH공사 관계자는 "문제가 생긴 사업장은 토지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근저당, 가압류 등을 SH공사에서 해결한 뒤 건물매입 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보증보험 요건 완화, 합의점 못 찾아

시는 SH공사가 사업자를 대신해 세입자의 보증금을 선지급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 짓는 모양새다. 그러나 제2의 보증금 미반환 사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벌어진 사업장의 절반 정도는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다. 콘체르토 장위의 경우 전체 20가구 중 9가구, 아츠스테이 성산은 9가구 중 4가구다. 계약 종료를 앞둔 임차인들이 퇴거를 결정하면 시가 우선 변제해야 할 보증금은 더 커진다. 이 사회주택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은 보증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이 외에 다른 사회주택 사업자 상당수도 보증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다. 보증보험에 가입하려면 부채비율 90% 이하라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보증보험의 가입 기준을 낮추기도 어렵다. 시는 국토부, HUG 등과 여러 차례 협의를 통해 보증보험 가입 기준 완화 등을 논의했으나 가입 기준을 조정하지 못했다. 시 관계자는 "위반된 사업장은 계약 해지해서 매입하고 채무까지 떠안도록 방침을 수립해서 급한 불은 껐지만 사회주택의 재정 건전성 문제로 미반환 문제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건설부동산부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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