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7명 '폭염 작업 중지권' 필요…국회 문턱 못 넘는 '법'[위기의노동자]⑭

李대통령, 2022년 당시 노동 공약
산업안전보건법 4건 상임위 계류
노동자 법적 보호장치 미흡

국민 10명 중 7명은 기후위기 상황에서 노동자가 스스로 작업을 중단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응답했지만, 국회의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올해 폭염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보장 등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이 마련됐으나 법적 보호 장치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작업중지권, 냉난방시설 의무화 등 기후위기 속 노동자 보호 조치를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총 4건이 환경노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1일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사유에 폭염·한파를 추가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또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작업 중지로 인한 임금 감소분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지난달 폭염·폭우·폭설 등 기후위기 상황에서 사업주의 작업 중지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안전 작업이 보장될 수 있도록 조사·개선 조치 전까지는 재작업을 금지하고, 작업 중지 해제 과정에서 노동자 참여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폭염·혹한 등 기상 여건 변화에 따른 산재 예방을 위해 물류창고 등 근무 장소에 환기·냉방·난방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이용우 의원은 지난해 9월 작업중지권 요건에 기상 여건을 포함하고, 사업주가 안전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이 시정·작업 중지를 직접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냈다.

실제 국민들은 작업중지권 도입에 긍정적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월 1일부터 7일까지 전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3.9%가 '자연재해 상황에서 직원들이 스스로 판단해 작업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특히 20대(83.1%)와 특수고용·프리랜서(82.2%), 건설업 종사자(78.8%)의 찬성이 높았다.

전문가들은 입법 보완과 노사 문화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현철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호남대 교수)은 "폭염은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재난"이라며 "국회가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기존 법체계를 정교하게 보완하고 현장의 빈틈을 메울 수 있는 노동자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는 노동 현장에서 노사 간에 기후와 작업 조건 변화에 맞게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며 "근로자의 생명을 존중하는 성숙한 노사 관계가 형성될 때 법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사회부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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